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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Dec 26. 2023

크리스마스엔 케잌 대신 만두로


  우리 식구는 만두를 아주 좋아한다. 매 해 12월 31일이 되면 네 식구 모여 만두를 빚었다. 내가 소를 만들고 피를 밀면 세 남자는 머리를 맞대고 만두를 빚었다.
 찜기에 쪄서 내놓으면  모락모락 김이 오른 만두를 입바람으로 식혀 먹으며 차가운 소주로 입안을 식혔다. 그렇게 묵은해를 배웅했다.
 해가 바뀌는 1월 1일에는 떡만둣국을 끓여 먹으며 새해를 마중했다.

 이번 연말엔 큰 아들은 호주여행 중이고 작은아들은 직장을 구해 제주도로 내려가는 바람에   모일 수 없게 되었다. 우리 부부도 연말엔 여행 계획이 있다. 그래서 성탄절에 만두를 만들어 먹기로 했다.

 전 날, 5일장에 나가 만두소에 필요한 재료를 구입했다.
밀가루 반죽을 해서 숙성이 되라고 차가운 곳에 두었다. 차가운 곳에 두었다 따뜻한 곳으로 오면 반죽이 부드러워진다.

 아침을 먹고 만두소를 만들기 시작했다.
묵은 김장김치는 물에 헹구어 양념을 털어 냈다. 김치를 다지고 숙주나물도 데쳐서 다졌다. 두부도 으깨었다. 이제 자루에 넣어 물기를 빼야 한다.
그런데 아무리 찾아도 자루가 없다. 지난 설에 수원  아들집에 두고 온 것을 깜박했다.

 


 나는 작업실로 들어가 원단산 밑에 깔려 있는 삼베를 꺼냈다. 대충 크기를 가늠해 가위로 잘랐다. 재봉틀로 드르륵 박아 자루를 만들었다. 이럴 때마다 내 바느질 취미가 아주 유용하게 쓰였다.
 급하게 만든 자루를 삶아 다진 재료를 넣었다.
예전에 엄마는 맷돌을 올려서 물기를 뺐는데 난 양푼에 물을 가득 받아 올려놓았다.



 물기가 빠지는 동안 다른 재료를 준비했다. 만두소를 만드는 일은 다지는 일의 연속이다.
지난밤에 불려 둔 당면은 친구가 보내준 맛간장으로 간을 해서 들기름에 볶아 다졌다.
양파와 대파를 다졌다. 엄마는 무나물을 만들어 다져 넣었는데 나는 미처 준비하지 못했다.
간 돼지고기도 후추와 맛간장을 넣어 볶았다.
그러는 사이 다진 김치에 물기는 적당히 빠졌다.
양푼에 모든 재료를 넣고 마늘과 고춧가를 더해 소금으로 간을 했다. 계란 몇 개 깨 넣고 들기름(난 참기름보다 들기름을  선호한다.) 휘휘 둘러 골고루 버무렸다.



   준비된 재료를 식탁에 두고 자리를 잡았다. 홍두깨 대신으로 소주병에 물을 채웠다. 물에 무게로 인해 힘들이지 않고 피를 쉽게 밀수 있다.
내가 피를 밀어 남편에게 건네면  남편은 그것을 받아 만두를 빚었다

 

  만두의 모양새는 딸을 임신한 임산부의 배를 닮아야 이쁘다. 남편이 빚은 만두는 바람이 살짝 빠진 풍선을 닮았다.
"여보!  만두 좀 예쁘게 빚어봐! 마누라는 이쁜데 만두는 어째 요래 찌그러지냐?"
"괜찮아. 당신만 이쁘면 돼!"
"네네네! 당신 하는 말이 이뻐서 내가 봐준다."

 

 남편이 빚은 만두를 미리 김을 올린 찜기에 쪄 냈다. 수다도 떨어야 하고  뜨거운 만두도 식혀 먹어야 하고 입이 바쁘다. 거칠게 다져진 김치가 입안에서 아삭아삭  씹히는 식감이 좋다.   쪄 내기 바쁘게  접시를 비웠다. 몇 개를 빚었는지 가늠할 수가 없다. 저녁에 국으로 끓여 먹을 만두만 남기고 모두 쪘다. 그리고 없다.

  


떡만둣국을 끓여 저녁을 차렸다. 나는 숟가락에 만두를 얹어 남편 앞으로 내밀었다. 남편도 만두 하나를 숟가락에 얹어 내 앞으로 내밀었다.  숟가락을 부딪히며 외쳤다.
"여보! 크리스마스에  케잌 대신에 우린 만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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