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거인 Dec 28. 2023

내 안에 꼴통은 아직 살아있었다



 애초에 이렇게 많은 가방을 만들 계획은 없었다.
재능기부 회원 중 한 명이 고추장을 만들고 족발을 삶아 마을 장터에서 팔았다. 그 이익금으로 필리핀 봉사 여행 경비의 3분의 1을 찬조한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듣고 감사한 마음은 차치하고 넙죽 받을 수가 없었다. 고민 끝에 여행의 필수 아이템인 가방을 만들어 재능기부를 하기로 했다. 처음 계획은 일곱 개였다. 하지만 동생들이 아들이 지인이 콕콕 눈독을 들였다. 일주일째 작업실에서 살았지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있는 일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러다간 한 해의 끝을 작업실에서 보내게 생겼다. 그러고 싶지 않은 나는 끝을 보리라 다짐했다. 아침부터 작업실로 들어가 재단만 해놓고 미루던 작업을 마무리했다.





 한꺼번에 하려고 미뤄둔 작업이 남았다.  안에 시접을 바이어스로 감싸는 과정이다. 빡빡하게 감싸지 않으면  새끼줄처럼 베베 꼬여 보기 싫다.      바이어스의 폭은 좁고 시접의 두께는 두껍다.  송곳으로 바이어스의 끝을 안쪽으로 당겨가며 시접을 감쌌다. 두꺼운 천을 견디지 못하고 바늘이 부러지면 낭패다. 조심조심 질금질금 밖아야 한다.
열다섯 개의 가방에 무한반복을 하느라 손가락엔 쥐새끼가 덤벼들었다.





어느새 시간은 밤 열두 시를 지났다. 퉁퉁 부은 손가락 끝에 감각이 둔해졌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고리를 연결하는 작업을 끝내야 한다. 고리를 끈에 끼우고 연결해서 박고 확인해 보면 꼬여있다. 혼미해진 정신 탓이다. 정신을 차리고 연결해보면 또 꼬였다. 내 입에서 육두문자가 튀어나왔다. 머리를 흔들어 정신을 깨웠다.







 작업을 끝내고 거실바닥에 열여섯 개의 가방을 나란히 진열했다. 한 개의 가방은 벌써 주인을 찾아갔다. 시계를 보니 작은 시곗바늘이 1자를 향해 가고 있었다. 안방에서는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가방 구경을 나왔다. 나는 허리춤에 양손을 얹고 바닥에 진열된 가방을 한참 동안 내려다보았다.  손으로 내 머리통을 쥐어박으며 혼잣말을 했다.
'야! 이 꼴통아! 넌 제정신일리가 없어. 이건 미친 짓이야. 킥킥킥 그래 나는 미쳤던 거야.'
 


 내게는 꼴통의 기질이 다분했다. 젊었을 때의 성향이었고 세월이 흐르며 사그라들었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열일곱 개의 가방을 만들면서 다시 살아났다. 죽지 않은 꼴통의 똥고집은 결국 승리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새로운 탄생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