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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Dec 29. 2023

나의 사랑 나의 오스칼



 베르사이유의 장미라는 만화책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던 시절이 있다. 그때가 중학생 때였다. 그 시절의 여학생들이라면 오스칼이라는 만화 주인공을 좋아하지 않은 학생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책이 귀하던 시절이었다. 서로 순서를 정해 놓고 전 학생들이 돌려 가며 읽었다. 앞 순서 친구가 늦게 읽으면 그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빨리 읽으라며 재촉하다가 말다툼을 벌이곤 했던 기억이 있다.
 

 내게 캔디의  테리우스가  풋풋한 첫사랑이었다면  오스칼은 찐 사랑이었다. 형편없는 그림솜씨로 오스칼의 얼굴을 그려 무지 공책  한  권을 가득 채우기도 했었다.
 


 세월이 지남에  따라  뜨거웠던 나의 짝사랑도 서서히 빛을 잃어갔다. 이제는 내게 그런 열정이 있었는지 조차 기억에 없다. 그런데 그 사라진 기억을 다시 찾아준 친구가 있다. 그 친구는 취미를 공유하는 바느질 밴드에 또래 친구였다.
 



 10월에 홍천에서  모임이 있었다. 그때 입고 간 내 셔츠를 그 친구가 맘에 들어했다. 하지만  이미 옷의 주인은 내가 아니었다. 또 다른 친구에게  넘겨준 뒤였기에 내게 선택권은 없었다.
 서로 입어 보고 하더니 두 번째 친구가 더 잘 어울린다며 양보했다. 결국 그 옷을 맘에 들어하던  두 번째 친구가 주인이 되었다. 이후 그녀는 잘 입고 다닌다며 인증샷을 여러 번 보내왔다.
내  몸에 맞춰 만든 내 옷이었지만 키 작은 나보다  키가 크고 피부가 뽀얀 그 친구에게 훨씬 잘 어울렸다.  내 옷은 또 만들면 되지.라고 생각했지만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그녀는 자수도 잘 놓고 천에 그림도 잘 그리는 친구다. 얼마 전 그 옷에 대한 보답으로  크리스마스 선물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오스칼의 얼굴이 담긴 쿠션과 몇 개의 사진을 더 보내왔다. 난 서슴없이 오스칼을 선택했다.
 


 어제 오스칼이 내게 왔다. 택배박스를 열어 보니 오스칼이 떡하니 누워서 나를 향해 뜨거운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나도 오스칼을 향해 설레는 눈빛을 발사했다. 세상에나 머리카락 하나하나 몸 선마다 아우트라인 기법의 자수가 놓여 있었다. 이것을 한 땀 한 땀 손으로 수를 놓은 것이다. 친구의 정성에 눈물이 울컥 솟았다.
 

  오스칼을 가만히 가슴에 품었다.  감성은 다시 사춘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중학교 시절을 행복하고 빛나게 해 주었던 나의 오스칼이 내 가슴에 안겼다. 친구의 정성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가슴이 따뜻해진다. 뜨거운 눈물이 흘러내린다.
참 주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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