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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Jan 03. 2024

남편의 육십 번째 생일





 
  여섯 살 때쯤으로 기억된다. 엄마는 갑자기 커다란 보자기에 짐을 쌌다. 쌓인 보따리는 리어카에 실렸다. 아버지는 리어카에 실린 짐을 연신 어디론가로 날랐다. 나도 리어카에 실렸던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다음날 초가집이 헐렸다. 굵은 나무들이 마당에 쌓였다. 아버지와 마을 남자들이 우리 집 마당에 모여서 톱질을 했고 대패로 나무를 밀어 반듯하게 만들었다. 반듯해진 나무에 먹줄을 길게 늘어뜨려 위로 당겼다가 놓으면 나무에 까만 선이 선명하게 나타났다. 그 모습이 신기해서 내가 하겠다고 떼를 쓰곤 했었다.
 아버지는 일자형 초가집을 헐고 마을에서 제일 먼저 지붕에 슬레이트를 얹은 기역자형 집을 지었다.
난 새로 지은 집에서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학교에서 돌아오니 집안이 요란했다. 많은 사람들이 모여 부산하게 돌아다녔다. 화려한 옷을 입은 여자가 장구를 메고 신나게 두들기고 있었다.
아버지는 할머니를 업고 춤을 추고 있었다.
할머니는 아버지 등에 업혀 소리를 질렀다.
"우리 아들이 최고다! 우리 용기가 최고다!"
손을 들고 소리치는 할머니는  울고 있었다. 할머니의 환갑을 기념하는 잔치는 삼일 동안 계속되었다.
 남편은 6남매의 장남이었다. 결혼을 하고 나니 시아버님의 환갑이 다가오고 있었다. 가난했던 신혼부부는 시아버님의 환갑잔치를 해드릴 여건이 되지 않았다.
고민 끝에 남편에게 제안했다.
"내년에 아버님 환갑인데 잔치는 못하더라도 선물은 해드리자. 그러려면 지금부터 준비해야 하는데."
남편이 의아해하며 물었다.
"우리가 지금 선물해드릴 형편이 되어야 말이지.
무슨 선물을 해드려야 하는데?"
"아버님 손주 기다리시잖아. 내년에 손주 안겨 드리면 환갑잔치 안 했다고 서운해하시지는 않겠지?"
이듬해 5월 23일 밤 열두 시가 넘은 시간에 큰 아들이 태어났다. 시아버님은 구리시에서 첫 차를 타고 수원으로 오셨다.
아들이라는 소식에 주무시지도 않고 한자사전을  뒤져가며 손자의 이름(在訓)을 지어서 오셨다고 했다.
손자가 태어났다며 싱글벙글하시는 시아버님에게
나는 의기양양 크게 생색을 냈다.
"몇 달 있으면 아버님 환갑이신데 잔치 못 해 드리는 대신에 선물로 아버님이 바라시는 손자 안겨드리는 거예요."
 



  어제는 남편의 육십 번째 생일이었다. 기념으로 가족여행을 떠나려던 계획은 아이들의 일정이 갑자기 바뀌면서 틀어졌다. 남편은 요즘에 환갑이 무슨 의미냐고 그냥 지나가자고 했지만 그러기에는 너무 서운했다. 남편과 나는  안동과 봉화 그리고 동해바다에서 새해를 맞으며 3박 4일 기념여행을 했다.
 

 

 생일 아침엔 미역국을 끓였다. 잡채가 먹고 싶다고 해서 점심으로 잡채를 만들었다. 잡채를 먹으며 남편에게 물었다.
  "내가 생일 선물을 하려고 하는데 필요한 걸 사 줄까? 저녁에 외식을 할까? 아님 현금으로 줄까? 선택해!"
 남편은 망설이지 않고 현금이라고 대답했다.
난 그동안 아르바이트해서 조금씩 모아둔 사임당 언니 몇 장을 봉투에 넣어서 남편에게 내밀었다. 봉투 안을 확인한 남편의 입이 옆으로 길게 늘어졌다.
나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다가오는 나의 육십 번째 생일을 인지시켰다.
"2년 동안 이자가 얼마나 불어나는지 기대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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