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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Jan 04. 2024

여보와  당신




 일찍 저녁을 먹고  텔레비전 앞에 앉아 여섯 시 내 고향을 보고 있었다. 재래시장을 소개하는 코너에서 아내가 남편을 오빠라고 불렀다.
난 오빠라고 부르는 그 호칭이 거슬렸다.
" 왜! 남편을 오빠라고 부르지? 어떻게 남편이 오빠가 되지?"라며 중얼거렸다.
듣고 있던 남편이 내 말을 받았다.
"오빠라고 부르는 게 어때서? 남편의 나이가 많으니까 오빠라고 하겠지."
"아무리 나이 차가 많아도 부부는 동등한 관계인데 오빠라고 하면 안 되지. 그럼 아내가 나이가 많으면 누나라고 불러도 된다는 거야? "
"그런데 왜 우리가 남들의 호칭을 가지고 싸우는 건데? 우리만 그렇게 안 부르면 되는 거지."
티격태격하던 우리는 작은 아들의 이야기로 자연스럽게 넘어갔다.
 




  선하게 웃는 모습이 매력적인 남자였다. 나를 내려다보며 웃는 그 남자에게 첫눈에 반해 버렸다. 친구의 소개로 만난 그 남자는 나보다 두 살이 많았다. 그때 내 나이는 열아홉이었다.
그때만 해도 이성의 감정이 뜨겁지 않았던 우리는 서로의 호칭으로 이름을 불렀다.
 만나고 6개월쯤 지났을 때 그 남자는 해군에 지원해서 군대를 갔다. 바다에 나가 군생활을 해야 하는 특성상 면회가 쉽지 않았다. 35개월 동안  단 한 번의 면회도 가지 못했다.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호칭은 자연스럽게 00씨로 바뀌어 있었다.
 



  결혼을 하면서 남편에게 부탁했다. 나를 부를 때 이름을 부르거나 야!라고 부르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까지 나는 남편에게 자기야!라고 불렀다. 남편은 내게 부인!이라고 불렀다.
첫아이가 태어나면서 아이의 이름을 붙여  재훈이 아빠!  재훈이 엄마!라고 불렀다.
세 살 터울의 작은 아들이 태어났다. 건강하게 잘 자란 작은아들은 초등학생이 되었다.
저녁을 먹고 네 식구는 텔레비전 앞에 모여 앉아 수다를 떨며 장난을 치고 있었다. 작은아들이 느닷없이 물었다.
 "엄마 아빠는 왜? 재훈이 엄마. 재훈이 아빠라고만 해? 그럼 재석이 엄마. 아빠는 어디 있어?"
억울하다는 듯이 따져 묻는 그 물음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얼음장이 갈라지는 것 같은 쨍한 통증이 내 뒷덜미를 치고 올라왔다.
 아이의 질문에 할 말이 없어진 내가 물었다.
 "그럼 뭐라고 불러야 하는 건데?"
 "드라마에서 보면 엄마, 아빠들은 여보, 당신이라고 부르잖아? 그런데 왜? 엄마 아빠는 재훈이 엄마, 아빠라고 부르냐고! 재석이 엄마. 아빠는 왜 없냐고!"
 따지듯 소리치는 아이는 어느새 울먹거리고 있었다.
어른들이나 보통 주변의 부부들도 보면 대게 큰아이의 이름을 붙여 상대를 부르곤 했었다.
환경에 익숙해진 우리 부부도 아무 생각 없이  큰 아이의 이름을 붙여 불렀다. 생각 없이 부르던 호칭으로 인해 작은아들은 소외감을 느꼈을 것이다.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 얼마나 억울했으면 울먹거리며 따졌을까? 생각 없이 했던 행동들이 아이에게 상처가 되었다는 것을  헤아리지 못했던 젊은 부모는 반성했다.
그 이후 우리 부부의 호칭은  여보와 당신으로 바뀌었다.



  나는 남편 얼굴에 내 얼굴을 들이대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여보! 나도 당신한테 옵빠!라고 불러 줄까?"
"됐어! 당신 아니어도 오빠라고 불러 주는 동생이 둘이나 있어!

  


그때 작은 아들이 아니었으면 육십을 보고 있는 지금도 큰 아이의 이름을 붙여 누구의 아빠. 엄마로 부르고 있었을 것이다.

철 없던 젊은 부부는 아이들에게서  배을게 더 많다는 것을 실감했던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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