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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Jan 18. 2024

할머니 은행

              

  

 집에서 닭장으로 가는 길에는 작은 텃밭이 있다. 그 밭에는 냉이가 빼곡하게 자라고 있다. 양지바른 곳엔 어느새 꽃이 핀 아이들도 있다. 저녁에 냉이된장국을 끓이려고 호미를 들고 밭으로 갔다. 겨울이지만 얼지 않은 흙은 부드러워서 호미질하기 좋다. 땅을 콕콕 찍어 한 움큼 캐서 뿌리에 묻은 흙을 털어 바구니에 담았다.

 나는 어느새 호미가 들어가지 않을 정도로 꽁꽁 언 땅에서 냉이를 캐고 있는 내 유년 시절로 돌아간다.     

 




 

 내가 살던 마을에서  큰 개울 건너면 석고개라 불리는 큰 마을이 있다. 그 마을에는 상을 팔러 다녔다고 ‘상장수아줌마’라 불리는 아주머니가 살았다. 그 아주머니는 마을 사람들이 뜯은 나물들을 사 모아서 경동시장에 내다 팔았다. 


  봄이 되면 나는 할머니를 따라 자주 산에 올랐다. 제일 먼저 나오는 홑잎 나물을 훑었다. 그리고 원추리. 취나물, 고사리. 삽주. 잔대 싹을 뜯었다. 할머니는 뜯은 나물을 분리해서 ‘상장수아줌마’에게 팔았다. 나물을 팔고 받은 돈 일부를 내 손에 쥐어 주었다. 난 그 돈을 다시 할머니에게 맡겼다. 총 맡긴 금액이 얼마인지 확인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돈맛을 알게 된 나는 할머니를 따라다니며 산나물을 눈에 익혔다.

 4학년이 되고 5학년이 되면서 친구들과 냉이를 캐러 다녔다. 우리는 냉이가 동네 어느 밭에 많은지 알고 있었다. 대부분 들깨나 콩을 심었던 밭보다 고추나 배추를 심었던 밭에서 잘 자랐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책보는 마루 끝에 던져 놓고 호미와 바구니를 챙겨 냉이를 찾아 이 밭에서 저 밭으로 돌아다녔다. 날카로운 겨울바람에 손은 갈라지고 터져서 피가 나곤 했지만 해가 서쪽으로 기울 때까지 냉이를 캤다. 집으로 돌아와 우물가에서 냉이에 묻은 흙을 씻어 보자기에 쌌다. 냉이를 팔기 위해 물이 뚝뚝 떨어지는 보따리를 들고 친구들과 함께  신나게 달렸다. 막차가 끊기기 전에 ‘상장수아줌마’를 만나야 하기 때문이었다. 아줌마는 보자기를 묶은 매듭 부분에 저울의 코를 끼우고 긴 막대가 수평이 되도록 추를 움직여 무게를 쟀다. 그리고 무게만큼의 금액을 우리에게 주었다.

어느 날은 10원도 벌었고 시세가 좋은 날은 100원도 벌었다. 나는 냉이를 팔아 받은 돈의 일부는 공책이나 연필을 사고 일부는 주전부리하는데 썼다. 알사탕을 입에 물었고 라면땅을 오독오독 씹었다.

 엄마는 그 돈에 욕심을 내서 원금마저 사라지게 하는 마술을 부렸다. 그 이후 엄마에게 돈을 맡기는 멍청한 짓은 하지 않았다. 남은 돈은 정확하게 세어서 원금 보장이 되는 할머니에게 맡겼다. 그러니까 할머니는 나의 은행인 셈이었다.

 5학년이 되면서 학교에서 통장을 만들어 주었다. 선생님은 통장에 저금하는 방법을 설명했다. 10원을 저금해도 돈이 불어난다는 설명까지 덧붙였다. 10원을 넣으면 15원도 될 수도 있다는 그 말은 믿을 수 없었지만 선생님 말씀은 무조건 믿었다.

 학교에 갈 때마다  할머니 은행에서 10원씩 인출했다. 선생님은 조례시간이면 통장을 꺼내어 학생들이 저금한 금액을 적고 확인시켜 주었다.  난 방학을 제외하고 하루도 빠지지 않고 저금했다.  많은 금액은 아니었지만 매일매일 저금한 덕분에 저축상까지 받았다.

통장에 적힌 금액은 날로 불어났다. 더 열심히 나물을 캐러 다녔다. 그렇게 2년  동안 저금한 돈은 졸업식을 하는 날 내 손에 들어왔다. 봉투를 열어보니 만 원짜리 종이돈 넉 장과 오천 원짜리 한 장 그리고 동전이 들어 있었다.

난 그 돈을 할머니와 엄마에게 자랑하면서 다시 할머니에게 맡겼다. 하지만 엄마는 중학교에 가려면 교복을 맞춰야 한다며 그 돈이 또 사라지는 마술을 부렸다.      

 




  어려서부터 부지런만 하다면 돈을 벌 수 있다는 걸 할머니에게서 배웠다. 지금까지 살면서 많은 돈은 벌지 못했다. 하지만 돈 때문에 곤란을 겪어 본 적도 없다. 돈이 없으면 아껴 쓰면 되는 거였고 부지런히 일해서 여윳돈이 생기면 통장의 금액을 늘렸다.      




   나는 할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냄비에 쌀뜨물을 받았다. 멸치로 육수를 내고 된장을 풀었다. 냉이를 ‘쫑쫑’ 썰어 넣고 한소끔 더 끓여 저녁상을 차렸다. 냉이된장국에 밥을 말아 한 숟갈 가득 퍼서 입안으로 욱여넣었다. 입안으로 퍼지는 냉이의 향이 히죽이 웃고 있는 할머니의 얼굴을 데려왔다. 저녁을 먹은 후. 할머니와 냉이의 추억 글을 쓰는 지금 창밖에는 겨울비가 조용히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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