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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Jan 24. 2024

남편이 만들어 준 계란말이

(스테인리스 팬을 사용해 너덜너덜한 첫 번째 작품)



 일요일에는 평소보다 이른 시간에 저녁을 먹었다.
남편은 배고픔을 참지 못한다. 밤 아홉 시가 넘은 늦은 시간이었다. 텔레비전을 보던 남편이 냉장고 문을 열었다. 하지만 냉장고 안에는 먹을만한 게 없었다. 냉장고 앞에서 기웃거리던 남편이 주방으로 들어갔다. 따그닥 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기름 냄새가 거실로 너머 왔다.


  잠시 후 한 손엔 접시를 들고  한 손엔 캔맥주를 들고 왔다.
'당신 필리핀 갔을 때는 예쁘게 잘 되었는데 오늘은 스테인리스 팬에서 만들어 그런지  잘 안되네' 라며 거실탁자에 내려놓았다.
접시에는 스크램블 비슷한 형체를 알 수 없는 물체가 통째로 담겨 있었다. 나는 이게 뭐냐고  물었다. 계란말이라는 남편의 대답이 돌아왔다
접시에 담긴 음식을 보고 웃음이 터졌지만
이내 정색을 하고  "이야!  당신 계란말이도 할 줄 알어? 이게 웬일이다니?  참 오래 살고 볼일이다."라고 했다.  
젓가락으로 찢어서 한 입 맛을 보는데 녹지 않은 소금이 '아그작' 소리를 내며 씹혔다.
짠 계란말이를 씹으며  스테인리스 팬은 미리 예열해서 사용해야 한다고 일러 주었다.  남편은 다시 코팅팬에서 만들어 오겠다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코팅팬을 사용해 제법 모양을 갖춘 두 번째 작품)




  남편이 끓이는 라면은 일품이다. 두 아들도 아빠가 끓인 라면을 좋아한다. 큰 아이는 군대에 있을 때 제일 먹고 싶었던 게 아빠가 끓인 라면이라고 했을 정도다.
 라면 끓이는 것을 제외하고 남편이 만들었던 요리는 내 생일에 끓여 준 딱 한 번의 미역국이 전부다. 난 소고기와 미역만 볶다가 집간장으로 간을 한 국을 좋아한다.
 남편은 정성을 다 한다며 유튜브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한참 후에 들고 나온 미역국의 맛은 참담했다. 남편의 레시피는 참기름을 넣고 볶다가 물을 붓고 소금으로 간을 했다. 그렇게 실패를 경험하고 다시는 미역국을 끓이지 않는다.
 남편이 두 번째  계란말이를 한다며 주방으로 들어갔다. 난 등뒤에 대고 새우젓으로 간을 하라고 일러 주었지만 두 번째도 또 소금이 씹혔다.
그럼에도 미역국 이후 처음 있는 일이기에 감동이 쓰나미처럼 밀려왔다. 나는 입안에 맴도는 짠맛을 맥주 한 모금으로 희석시키며 양손의 엄지를 척! 하고 치켜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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