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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Jan 24. 2024

집 밖은 위험해



   며 칠째 겨울비가 내렸다. 눈이 오거나 비가 내리거나 땅속에서 봄을 준비하는 생명들에게는 고마운 현상이다.
 비가 멈춘 후. 그 자리엔 거센 바람이 강한 추위를 데리고 쏜살같이 달려왔다. 덕분에  숲은 맑게 깨끗하게 빛난다. 집 아래 호수에는 비를 피해 숨어 있던 윤슬이 다시 나타났다. 청둥오리들은 거센 바람에 일렁이는 윤슬 위에서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집 안에서 보는 바깥 풍경은 평화였다. 문을 열면  살 속으로 파고드는 거센 바람은 공포였다.
개와 닭들을 챙기는 일을 제외하고는 집 밖으로 나가지 않았다.  추위를 피해 작업실로 들어갔다. 그동안 만들어야지 하면서 미루던 일을 시작했다. 내 옷은 직접 만들어 입지만 막상 입으려고 보면 옷거지가 따로 없다. 특히 겨울바지가 없다.
그래서 후딱 고무줄 바지 한 벌 만들고  또 한 벌을 만들 생각에 적당한 원단을 고르기 위해 원단이 쌓여 있는 선반  앞으로 갔다.

 검은 바탕에 꽃무늬가 그려진 본딩원단이 한쪽 구석에 둘둘 말려있는 게 눈에 거슬렸다.
뭐지? 하고 펼쳐 보니 일전에 재능기부 하는 데 사용하라며  친구가 보내준 원단에 섞여 온 원단이었다. 누구를 만들어 주려고 했는지
조끼 형태로 재단만 해 놓은 상태였다. 펼쳐서 사이즈를 가늠해 보니 내가 한 명은 더 있어야 맞을 것 같은 특대 사이즈였다. 고민 끝에 전체적으로 재단을 다시 해서 가늠해 봐도 품이 너무 컸다. 소매통  마저 내 팔  두 개가 다 들어갈 정도로 컸다.
이리저리 궁리하다 겨드랑이 부분에 가는 고무밴드를 박아 통을 줄이고 허리에는 4센티짜리 고무밴드를 박아 주름을 주기로 했다.
그리고 재단하고 남은 자투리 조각천을 이어 붙여 주머니를 만들어 달았다.
하루종일 주물럭거려 완성해서 입어보니 허리 고무줄이 아래로 내려왔다. 내 짧은 다리가 더 짧아 보이는 착시 현상이 나타났다. 잠을 자는데 내 짧은 다리가 깊은 수면을 방해했다.


  밤새 거세게 불어대는 바람소리와 짧은 다리로 인해 잠을 설쳤다.
오늘도 새벽부터 울어대는 바람이 심상치 않다. 이런 날씨에 집 밖은 위험하다. 작업실에서 놀아야지. 고무밴드를 뜯어 다시 위로 올려서 긴 다리로 보일 수 있게 수정해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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