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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Jan 25. 2024

넌 누구냐?



 어제 하루종일 조몰락거리며 만든 옷이 맘에 들지 않았다. 잘못된 부분을 수선하려고 애써 만든 옷을 뜯어 작업실로 들어갔다. 웰라의 오디오북을  듣기 위해 귀에 이어폰을 꽂았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을 수정해서 입어 보려고 거실로 나오며 이어폰을 뺐다.
이어폰을 빼자마자 닭들이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렸다.




  어제 사료 주러 갔을 때 매 한 마리가 날아가는 것을 보았다. 그  모습이 생각나  제대로 챙겨 입지 않은 채 닭장을 향해 뛰었다. 텃밭과 연결된 닭장 근처에는 멧돼지 침입을 막기 위해 울타리를 설치했다. 그 울타리 구석에서 커다란 새 한 마리가  날지 못하고 푸드덕거리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자 어제 사료를 주며 친구와 통화하던 중 닭장에서 매가 날아간다는 이야기를 했다. 친구는 대뜸 사진 찍어!라고 했던 말이 생각났다.  급하게 뛰쳐나오느라 휴대폰을 놓고 나왔다.
나는 매의 눈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너 뭐야? 나 핸드폰 가지고 올 동안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어! " 뒤 돌아 뛰는 발소리가 요란스럽다. 집으로 들어가 휴대폰을 들고 다시 뛰었다. 다행히 새는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콧등에는  노란 반점이 있었다.  털이 뽀송뽀송 한 것이 아직은 어린 새끼 같았다. 긴장했는지 눈에는 겁이 가득 들어 있었다. 주변엔  닭의 털인지 매의 털인지 잔털이 여기저기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사진을 찍고 닭장으로 가서 안을 들여다보는 순간, 내 손이 입을 막았다. 거기엔 내 소중한  한 마리가 다리뼈와 갈비뼈를 드러낸 체 처참하게 죽어 있었다.
지붕까지 그물망을 설치했는데 그것을 어찌 뚫고 들어갔을까? 이리저리 살펴보니 이음새 부분  한쪽에 큰 구멍이 보였다. 들어가려고 얼마니 용을 썼는지 군데군데 털이 박혀 있었다. 10개월을 키워서  이제 막 알을 낳기 시작한 닭이 죽었다.  







  마음도 상하고 괘씸한 생각이 들어  다시 새가 있는 곳으로 가서 눈을 째려봤다. 한참을 노려 보는데 문득 그 새가 불쌍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 날씨에 네 배를 채울 먹잇감들도 추위를 피해 숨어들었겠지. 아직 세상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어린 너는 배가 고팠겠지. 내가 계란 한 알 덜 먹을게.  닭 한 마리 보신해서 네 배가 부르다면 그것으로 되었다. "

그런데 어디가 다쳐서 날지 못하는 걸까? 나는 말벌 잡을 때 사용하는 매미채를 가져왔다. 혹시라도 내게 달려들까 봐 멀찍이 서서 채의 입구를 들이 밀어 새를  그물망에 담았다. 아무런 저항 없이 매미채에 담겼다. 새를 집으로 데려와 무서워 만지지는 못하고  눈으로만 유심히 살폈다.  




십 여분이 지났을까?  죽은 듯 조용하던 새가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동영상을 찍으려고 휴대폰을 켜는 사이 커다란 날개를 펴고 몇 번 날갯짓을 하며 두리번거렸다. 이내 큰 날개를 활짝 펴더니 호수 쪽으로 날아갔다. 그 모습이라도 찍고 싶은데 행여 놓칠세라 신발도 신지 않은 채 마당을 향해 뛰었다.






다행히 매는 멀리 가지 못하고 집 아래 전봇대에 내려앉았다. 사진을 찍으려니 거리가 멀어서 폰 렌즈엔 잡히지 않았다. 줌을 최대한으로 당겨  초점을 맞추고  한컷 한컷  최선을 다해 사진을 찍었다.
 비록 새끼지만 전봇대에 앉아 있는  모습은 기품 있고 당당했다. 그 모습 뒤로 갈녘의 햇살을 품은 호수가 연신 윤슬을 게워 내고 있다.
 

맨발인 나는 발이 시린 줄도 매의 모습을 한참이나 바라보았다. 느리지만 느리지 않은 자연, 자유롭지만 순리에 벗어나지 않는 자연, 오늘도 순리. 이치. 경이로움을 자연에게서  배웠다.



p s. 다치지도 않고 멀쩡한데 왜 날지 못했을까. 저 보다 큰 닭 한 마리를 다 먹어서 배가 불러 날지 못했나? 에이 진작에 물어볼걸!"


이 글을 쓰고 나서  통화했던 친구에게  사진을 보냈다.

이 새는 겨울 철새로 맹금류인  말똥가리라는 답장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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