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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Jan 28. 2024

남편! 알았쪄어!


 나는 요즘 며칠 째 작업실에서 생계형 옷을 만들며 보내고 있다. 어제도 아침을 먹고  작업실로 들어갔다. 남편은 소파에 비스듬히 누워  왕왕 떠들고 텔레비전을 보고 있었다.  

남편 옷을 만드는 중이라 입혀 보려고 나와 보니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다시 들어가 바느질을 하고 있는데 진동으로 해 놓은  핸드폰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열어보니 고로쇠나무에 녹색 물통이 매달려 있는 사진이었다. 나는 '헐! 벌써?'라고  쓰고 놀란 표정의 이모티콘을 보냈다.

 

 남편은 땅을 구입하면서  뒷산에 고로쇠나무 20주를 심었다. 그 나무가 크면 호수를 연결해서 집에서 고로쇠 수액을 받아먹을 수 있게 하겠다는 게 남편의 계획이었다.

  

   엊그제 남편은 고로쇠 물이 나오는지 뒷산에 올라가 봐야겠다는 말을 했었다.
 내가 작업실에서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남편은 뒷산에 있었다.

한참 후, 내려온 남편은 나무가 어려서 다섯 주의 나무만 뚫었다고 했다. 점심을 먹고 나는 다시 작업실로 들어갔다. 남편의 티를 만들어 마무리하기 전에 잘 맞는지 입혀 보려고 거실로 나왔다.
소파에 앉아 있던 남편은 나를 보더니 턱으로 식탁을 가리켰다. 거기엔 고로쇠 수액이 담긴 통이 놓여있었다.  
"어? 제법 많이 나왔네?"
"당신 다 마셔!"
"에이! 어떻게 나만 마셔?"
나는 주방으로 들어가 두 개의 컵을 들고 나왔다. 수액을 컵에 따라서 한 컵은 남편에게 주었다. 나도 한 모금 입에 물었다. 소믈리에가 와인의 맛을 느끼기 위해 입에 물고 우물거리는 것처럼 나도 흉내를 내 보았다.  부드럽고 달짝지근한  맛이  혀 끝에서 느껴졌다. 정제과정을 거치지 않고 나무에서 직접 받은 수액의 맛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했다.


  일반적으로 수액을 대량으로 받기 위해  나무에 꽂은 호수를 일일이 연결해서 큰 통에 모은다.  모인 수액은 정제과정을 거쳐서 고객들에게 간다.

 

 다음 날. 아침마다 반복되는 일상에 습관처럼 물을 끓여 음온수를 만들었다. 양손에 음온수가 담긴 컵을 들고 주방에서 나오는 나를 보더니 남편은 고로쇠 물통에 눈을 보냈다.
"저거 마셔. 당신 마시라고 받아온 물인데."
그 소리를 들은 내 입에서 뻣뻣해진 말이 훅! 하고 튀어나왔다.
 "이거부터 마셔야지! 따뜻한 물로 위장을 깨우고 나서 마셔야 되는 거야!"
  늘 말투를 예쁘게 하라고 지적받는 나였다. 고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많이 좋아졌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가끔 이렇게 툭툭 튀어나와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머쓱해진 나는 손은 뒷짐을 지고 입은 베실베실 웃으며 가슴을 앞으로 내밀었다. 엉덩이를 삐쭉삐쭉 좌, 우로 튕기며 남편 앞으로 갔다.
 콧구멍에 힘을 잔뜩 주며 "남편!  알았쪄어! 고마워. 잘 마실게. 이리 와 봐. 내가 모닝 뽀뽀 해주께!" 라며 허리를 숙였다.
 남편 입술에 내 입술을 가져갔다. 그런데 밤새 남편 입 속에 숨어 있던 입 냄새가 먼저 내 입술을 반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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