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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Jan 29. 2024

햇살이 전한 말



 일요일이 주는 느긋함과 편안함 때문일까? 늦잠을 잤다. 느긋하게 일어났지만 아직 동이 트기 전이다. 전기 주전자에 물을 끓여 음온수를 만들어 마시고 누룽지를 만들려고 돌솥에 찬밥을 안쳤다.

누룽지가 만들어지는 시간 동안 난 책을 읽으며 느긋하게 반신욕을 즐긴다.  25년 넘게 하고 있는  아침의 일상이다.

 내가 반신욕을 즐기는 동안 남편이  누룽지에 물을 부어 놓았다.

돌솥의 열기로 누룽지는  알맞게 불었다.

나는 커다란 대접에 누룽지를 담아 아침을 차린다. 주방창으로 들어온 햇살이 식탁에 머문다. 나는 식탁에 올라 앉은 햇살 너머 남편을 보며 텃밭에 거름을 가져다 놓으라고 부탁한다. 남편은 아직 땅이 녹지도 않았는데 벌써 거름을 내냐고 핀잔을 준다.


 전 날, 오후의 햇살을 즐기며 텃밭을 둘러봤다. 쪼그리고 앉아 내 손에 흙을 담았다. 겨우내 얼었다 녹았다를 반복하던 흙이 부드럽게 부서졌다.
 부추 밭에 부추는 어느새 싹을 틔우고 있었다. 싹을 올리기 전에 거름을 해야 한다. 언젠가 싹을 틔운 후 거름을 했더니 잎이 누렇게 떠서 낭패를 본 적이 있었다.

 남편은 숭늉이 담긴 그릇을 들어 후루룩 소리를 내며 마시면서 거름을 내기에는 아직 이르다고 구시렁거린다.
 나는 감 농사를 짓는 농부들을 봐라. 벌써 감나무에 거름을 내고 있다. 부지런한 농부는 계절을 앞서 나가야 하는 거라고 응수한다.
 남편은 장난기 가득한 눈을 흘낏거리며 누가 그러더냐고 묻는다.
나는 검지손가락을 펴서 창문으로 스며드는 햇살을 가리킨다. 다시 내 귀로 가져오며
"햇살이 방금 내 귀에 대고 그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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