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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Jan 30. 2024

나는 그녀를 어머니라 부른다.



  그녀와의 인연은 8년 전, 봄이 무르익던 5월의 어느 날이었다. 천연염색을 배우고 싶어 찾아간 그곳에 그녀가 있었다.
 차를 우리는 그녀의 첫인상은 고고한 학이 한 마리 앉아 있는 듯한 모습을 연상시켰다. 내게 차를 내어 주며 천연염색을 왜 배우고 싶냐고 물었다.
 



  나는 귀촌하기 전? 도시에 살 때 산에 자주 다녔다. 그때마다 나무나 풀들이 가지고 있는 색에 대해 알고 싶었다.  귀촌하고 나서 그 생각이 더 선명해졌다. 숲에 가는 것을 좋아하는데 그들이 가지고 있는 색을 알면 숲을 좀 더 깊이 있게 볼 수 있지 않을까요?라고 답했다.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그녀는 "우리 앞으로 좋은 인연 만들어 봐요."라고 했다. 그 인연으로 우리는 친구가 되었다.


 나는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는 것도 서툴다.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곤 하지만 어떨 때는 두렵기까지  했다. 그러다 보니 숲에 가는 것 말고는 집 밖을 잘 나가지 않는다. 가끔 그녀가 안부  전화를 하곤 했지만 겨울 동안 그녀를 만나지 못했다.



  오일장이 서는 날, 닭사료도 살 겸 장 구경을 하러 갔다. 장을 한 바퀴 둘러보고 집으로 오는 길에 차를 돌려 그녀의 집으로 갔다.

그녀는 나를 반갑게 맞았다. 차를 마시며 그동안의  안부를 물었다. 나는 겨우내  만들었다며 내 가슴에 메고 있던 가방을 내밀었다.

가방을 이리저리 살피던 그녀가 실용적으로 잘 만들었다며  맘에 들어했다. 나는 서슴없이 가방 안에 있던 물건을 꺼내고 그녀에게 건넸다.

"고생해서 만든 가방을 나를 주면 어째? "

"괜찮아요. 전 또 만들면 되지요."


 

그녀의 집을 나오는데 청국장 줄게 가져가라며 나를 불러 세웠다. 그녀는 해마다 많은 양을 만들어 냉동실에 얼려 두었다가 지인들에게 선물로 주곤 했다. 덕분에 나도 해마다 그녀의 청국장 맛을 보곤 했다. 그녀의 성품을 닮아 냄새도 많이 나지 않고 맛 또한 순해서 나보다 남편이 더 좋아했다.

늘 받아먹기만 하는 게 미안해서 사양했다.
  "어머니가 힘들게 만드신 건데 안 주셔도 되는데.."
  "자네도 힘들게 만든 가방 나 줬잖아."
  "그럼 묵은지 씻어 끓여 먹게 쪼끔만 주세요."
그녀가 얼려 놓은 청국장 봉지를 내게 건넸다.
  "감사합니다. 잘 먹겠습니다."
  "예쁜 가방을 받은 내가 더 고맙지."
집을 나서는데 그녀의 손녀가 인사를 하러 나왔다. 서울에서 대학을 다니는데 방학이라 집에 내려와 있었다. 그녀는 가슴에 매고 있던 가방을 손녀에게 내 보이며 자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어머니 설 잘 보내시고 또 숲에 가요!라고 외치며 그녀의 집을 나왔다.
 



 우리는 봄부터 가을까지 일주일에 한 번씩 숲을 걷는다. 열아홉 살의 나이 차이가 나지만 서로 느낌이 통하고 대화가 통하면 친구라며  동갑내기 친구로 지내기로 했다.
그녀는 내게 작은 거인이라 부른다. 나는 그녀를 어머니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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