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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Feb 01. 2024

보석보다 귀한 것을 버린 남편

장 가르기 하던 날에

  



  나는 음식을 할 때 된장보다 간장을 많이 사용한다. 정월에 장을 담그고 줄어드는 소금물을 보충해 가며 일 년을 기다린다. 사계절의 햇빛을 충분히 받아야 장의 맛이 깊어진다.  그렇기에 일 년은 맛있는 간장이 만들어지는 기다림의 시간이다.



  날씨가 빠르게 봄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더 따뜻해지기 전에 장 가르기를 해야 한다.
 콩을 불려 삶고 보리밥을 만들었다. 항아리는 가스레인지 위에 올려 소독을 해서 준비 과정을 끝냈다. 아침부터 서두르려고 했던 일은 밤사이 비가 내려 시작하지 못했다. 다행히 오전 10시가 넘어가면서 장 가르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로 바뀌었다. 장항아리를 열어 메주를 건져내고 간장은 소독된 항아리에 옮겨부었다. 70년 된 씨간장을 섞으려고  항아리 뚜껑을 열었다. 씨간장이 담긴 항아리 바닥에는 오랜 시간이 지나야 만 생기는 장의 결정체가 제법 많이 생겼다. 씨간장 일부를 새간장 항아리로 옮겼다. 이제 씨간장과 어우러져 맛있는 간장이 되기를 기다리면 된다. 그리고 제법 큰 덩어리의 결정체는 장소금을 만들려고 바구니에 따로 건져 보조주방  싱크대에 올려놓았다.



 다시 건진 메주를 들고 보조주방으로 들어가 미리 준비해 둔 재료를 손방망이를 이용해 잘게 으깼다. 메주를 부셔서 양푼에 쏟고 재료가 골고루 섞이도록 함께 치댔다.  항아리에 차곡차곡 눌러 담아 그 위에 비닐을 깔고 소금을 부어 골고루 펴서 공기가 들어가지 못하도록 했다. 뒷설거지를 하기 위해 살림살이를 들고 마당에 있는 수돗가로 나왔다.
장이 가득 담긴 항아리를 제자리로 옮기기 위해 거실에서 T V를 보고 있는 남편을 불렀다. 부름에 득달같이 달려온 남편은 항아리를 내가 지정한 곳으로 옮겼다.
그리고 주방 바닥에 떨어진 잔해물들을 씻어내는 물청소를 했다. 물청소를 끝낸 남편이 설거지를 하고 있는 나를  향해 소리쳤다.
 "이 통 안에 들어 있는 건 뭐야? 버려도 되는 거야?"
 "어! 그거 개복숭아 장아찌 만들려고 한 건데 딱딱하고 뻣뻣해서 버리려고. 닭 가져다주면 돼!"
 6월에 개복숭아 씨를 빼서 꿀에 재어 두었다. 몇 개월 후. 꿀과 과육을 분리했다. 버리기가 아까워 장아찌를 만들어 보려고 했다. 하지만 식감이 딱딱해서 포기하고 밀쳐두었다. 내가 생각한 통은 싱크대 상판 구석에 밀쳐두었던 그것이었다.
 


 설거지를 끝낸 나는 주방으로 들어가 건져 놓은 장소금부터 찾았다. 그런데 주방 싱크대 상판에 얌전하게 놓여 있던 소금이 보이지 않았다. 남편이 그 장소금이 들어 있는 그릇을 들고나갈 거라는  생각은 전혀 못했다. 큰일이다. 그 귀한 것이 사라지기 직전이다. 내 몸은 용수철이 튕기듯 뛰쳐나가 닭장을 향해 소리쳤다. '여보!' 답이 없다. 나는 재차 배에 힘을 주고 '여어보!' 소리쳤지만 조용하다. 그 순간 피가 머리 위에서부터 아래로 싸르르 내려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나는 양손을 입으로 가져가 나팔모양을 만들고 외쳤다. 야아 아아!' 그제사 왜?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거 아주 귀한 거야!  버리지 마!'라고 외치는 내 입에서는 제발 제발이라는 기도가 저절로 새어 나왔다.  '버렸는데!'라는 답이 느릿느릿 오더니 '다시 주워?'라는 물음이 따라왔다.
'커다란 덩어리만 다시 가져와!'라고 외치는 소리는 흡사 유리가 와장창 깨지는 소리 같았다.
남편이 바구니에 담아서 가져온 장소금은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그게 얼마나 귀한 건지 알아? 돈 주고도 못 사는 거란말이야. 자그마치 70년을 기다려 구한 거라고!" 속사포로 쏘아대는 나를 멋쩍은 표정으로 보고 있던 남편이 슬그머니 수돗가로 향했다.
 "알았어. 미안해. 대신 내가 깨끗하게 씻어 놓을게."라며 쭈그리고 앉아 물을 틀었다.
나는 쉬지 않고 따발총을 쏘았다.
"거창 사는 친구 시어머니의 60년 묵은 장에서 겨우 한 덩어리 얻은 건데, 그리고 내가 10년을 더 키운 건데, 그 세월을 어찌 돈으로 살 수 있냐고!"
기가 죽은 남편은 말없이 장소금을 흐르는 물에 닦고 또 닦았다.   



  일을 끝낸 남편이 소파에 멍하게 앉아 있다. 나는 남편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나와 눈이 마주친 남편이 고개를 숙인다. 왜?라고 묻는 내게 너무 큰 죄를 지어서라며 희미하게 웃는다. 닭장으로 가는 남편의 손을 살피지 못한 내 탓이었다. 따발총을 쏘아댄 게 미안해진 나는 장난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남편에게 다가갔다.  '됐거든요!"라며 양볼을 꼬집고 좌 우로 흔들었다.
 얼마나 다급하게 소리를 질렀는지 자고 일어나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목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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