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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Feb 08. 2024

훗 날, 우리 부부를 기억할 남아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

제주도 동백포레스트 카페에서 추억 남기기



제주도에서 두 번째 날이다. 아침 메뉴는 집에서 가져온 묵은지로 김치찌개를 끓며 먹었다.

 여행의 첫 번째 목적지는 커피도 마시고 동백꽃도 볼 겸 동백포레스트 카페로 정했다.

네 식구가 함께 움직일 때는 운전을 좋아하는 작은아들이 했다. 힘들게 키운 아이들 덕을 보는 순간이다. 나는 뒷좌석에 앉아 “신기사 안전 운전을 부탁해!”라고 외쳤다. 강한 바람으로 인해 거칠게 치는 파도를 보며 해안도로를 40여 분을 달려 목적지에 도착했다. 먼저 주차를 안내하는 직원이 우리를 반겼다. 주차직원이 있다는 것은 그만큼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거겠지. 직원의 지시에 따라 주차장에 차를 세웠다. 차에서 내려 바라본 카페는 아름드리 동백나무 울타리에 둘러싸여 있었다.     

 입구에는 표를 끊으려는 사람들이 길게 줄을 서 있다. 우리도 입장료 1인당 6천 원을 내고 들어갔다. 관광명소답게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꽃이 피는 시기가 지났는지 꽃잎이 바닥에 많이 떨어졌다. 그런데 일반적인 동백꽃이 아닌 것 같았다. 내가 알고 있는 동백꽃은 예쁘게 피었다가 시들지 않고 꽃 전체가 똑 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 떨어진 꽃을 보니 잎만 낱개로 떨어져 있었다. 꽃의 색상도 붉은색이 아니고 분홍빛에 가까웠다.

생각했던 동백꽃이 아니라 실망감이 컸다. 그러나 거금을 주고 들어왔다는 본전 생각에 ‘그래도 즐기자.’로 생각을 바꿨다. 우리 가족은 동백나무 숲을 천천히 걸으며 사진을 찍었다.     

 동백나무 사이사이에 있는 귤나무에 귤이 제법 달렸다. 분홍색 동백꽃과 노란색 귤이 조화롭게 어울렸다. 그중 한 개의 귤에 누군가가 손톱자국을 내서 웃는 표정을 만들어 놓았다. 나는 그 표정이 재미있어서 사진을 찍으려고 휴대폰을 가까이 가져갔다. 액정에 비친 귤의 민머리가 추워 보였다. 밑에 털어진 꽃잎을 주워 동백꽃 모자를 씌워 주었다. 다시 액정에 나타난 귤이 만족스럽게 웃고 있었다. 사진을 찍으며 나도 함께 웃었다.

 그러는 사이 가족들이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두리번거리며 찾고 있는데 남편이 산책로에 있는 나무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이 보였다. 그 앞에서 두 아들이 서성거렸다. 그 모습이 보기 좋아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고 외쳤다.

 "얘들아! 아빠하고 다정하게 눈빛 교환 좀 해봐!" 나의 주문을 남편이 받는다.

 "엄마 말 잘 들어야 해! 안 그러면 두고두고 잔소리 듣는다."

 "시끄럽고 빨리 그윽한 눈빛으로 마주 보라고!"

나의 주문에 세 남자의 어색해하며 웃는 표정이 참으로 가관이었다. 우리는 정원을 한 바퀴 돌고 커피를 마시려고 카페 안으로 들어갔다. 카페 안에도 포토존이 있어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 서 있었다.

 우리 가족은 맛집이나 포토존이나 줄 서서 기다리는 걸 싫어한다. 욕심은 나도 사진을 찍고 싶었지만 포기하고 자리 잡고 커피를 마시고 있는 사이 줄이 사라졌다. 사진을 찍을 수 있는 잠깐의 기회를 놓칠세라 나는 서둘렀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 모두 창문을 뒤로하고 앞모습을 찍었지만, 나는 뒷모습을 찍고 싶었다. 두 아들을 불러 포토존에 세우고 주문했다.

  "얘들아! 창문 양쪽에 서서 밖을 바라봐봐!"

 형제는 내가 요구대로 등을 보이고 섰다. 나는 그 모습을 휴대폰에 담았다. 휴대폰을 작은아들에게 건네며 우리 사진도 찍어달라고 부탁하며 남편을 불렀다.

 "여보 나를 사랑스러운 눈으로 쳐다봐 봐!"

아이들 앞에서 그런 표정을 지으라고 하자 남편은 어색한지 "에이! 나 사진 안 찍을래!"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나는 남편의 손을 잡아끌어 내 앞에 앉혔다. 멋쩍은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모습이 우스워서 배를 잡고 웃었다. 사진을 찍으려고 앞에 서서 우리의 행동을 지켜보고 있던 두 아들도 함께 웃었다.


 나는 부모님과 여행다운 여행을 했던 기억이 없다. 그래서인지 부모님을 생각하면 좋았던 추억이 거의 없다.

아버지는 내가 너무 어렸을 때 돌아가셨다. 엄마는 결혼하고 아이들하고 먹고사는 일이 바쁘다는 이유로 늘 뒷전이었다. 여유가 생기면 이라고 미루기만 했던 일들이 후회와 아쉬움으로 남았다. 그런 이유 때문이라도 나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아이들과 많은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한다. 나는 남편에게 다정한 포즈에 더없이 행복한 표정을 하라고 부탁했다. 훗날, 우리 부부를 기억할 남아 있는 아이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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