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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Feb 09. 2024

박물관은 살아 있다

제주도 가족여행기


 제주도에서 셋째 날은 아침부터 비가 내렸다. 우리는 아침을 먹고 비를 피해 작은아들이 안내하는 카페로 갔다.  형제는 커피를 마시며 비를 피해 여행할 수 있는 곳을 검색했다.


  형제의 안내로 도착한 주차장엔 먼저 도착한 차들이 제법 많았다. 차에서 내려 바라본 건물엔 ‘박물관이 살아 있다.’고 적힌 간판이 보였다.

 나에게 박물관은 오래된 유물이나 문화적 학술적인 자료를 수집해서 보관하는 장소의 개념이었다. 그런데 이 박물관에는 무엇이 살아있다는 걸까?라는 궁금증을 안고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안으로 들어가니 먼저 반기는 것은 아이들 웃음소리였다. 둘러보니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온 가족들이 대부분이었다.

실내의 조명은 화려하지만 밝지 않았다. 벽에도 바닥에는 여러 종류의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유명한 영화의 한 장면도 있고 동화 나라도 있고 바닷속 풍경, 고흐의 그림까지 제법 눈에 익은 그림들도 보였다. 그림이 있는 곳 아래 바닥에는 포토존이 카메라 모형의 그림으로 표시되어 있다. 아이들은 그림 위에서 부모들이 요구하는 포즈를 취했고 부모들은 그 모습을 찍느라 분주했다. 우리 가족도 그림의 분위기와 어울리는 자세를 취하며 사진을 찍었다. 찍은 사진을 확인해 보니 그림이 입체적으로 보이는 착시 현상이 나타났다. 여러 번 찍다 보니 실감 나게 자세를 잡는 요령도 자연스럽게 터득했다.

 화산이 폭발해서 불덩어리가 낭떠러지로 흘러내리는 그림 속에서 조심조심 나무다리를 건너고 보석나라에서는 그네를 탔다. 인어공주들 사이에서 나도 공주가 되어 고흐의 그림 속을 여행했다.      

 여행을 떠나기 전 나는 남편과 나의 커플 옷을 만들었다. 아이들은 그 옷을 입은 우리 부부를 보더니 말벌과 꿀벌을 닮았다고 했다. 해바라기꽃 앞에서 남편과 손을 잡고 날아가는 자세를 취하는 우리는 꿀벌이 되었다. 아이들 덕분에 꿀벌 부부가 되어 천상의 화원을 걸었다.

정신없이 살아있는 박물관을 즐기는 사이 어느새 출구 근처까지 왔다.

출구라고 쓰여있는 한쪽 벽에는 LED 조명이 ‘박물관이 살아 있다.’며 반짝반짝 빛을 내고 있었다. 나는 글귀 아래서 마지막 사진을 찍으려고 자세를 취했다. 그런데 남편이 어디서 가져왔는지 조화로 된 꽃다발을 내 앞에 들이밀었다. 무릎을 굽히며 꽃다발을 내미는 남편의 재치에 한바탕 웃는 사이 큰아들이 사진을 찍었다.

 나는 그 꽃을 받아 앞에서 공룡을 타고 놀고 있는 작은 아들에게로 갔다. 무릎을 꿇으며 아들에게 내밀었다. 그런데 아들은 웃기만 할 뿐 내가 내민 꽃을 받지 않았다. 서운해진 나는 “에라이! 싫음 관둬라!”라며 그 꽃을 다시 남편에게 내밀었다. 남편은 꽃다발을 다시 제자리에 놓았다. 즐거웠던 만큼의 아쉬움을 뒤로하고 박물관을 나오니 날씨는 맑게 개어 있었다.     

다음의 여행지는 물이 없는 엉또폭포가 보고 싶다는 작은아들을 따라 그곳으로 이동했다.

주차장에서 엉또폭포까지는 데크길이 조성되어 있었다. 길 한쪽엔 아름드리 동백나무가 길게 이어져 있다. 붉게 핀 꽃 속에 금가루가 촘촘하게 박혀있다. 나는 엉또폭포보다 동백꽃의 매력에 빠졌다. 많은 비가 내리는 날에만 물이 떨어진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답게 역시나 폭포에는 물이 없었다.      

 

 저녁을 먹으려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커다란 무지개를 만났다. 일곱 빛깔로 피어난 무지개는 도로를 달리는 우리 차를 계속 따라왔다. 나는 해안도로를 달리는 차 안에서 무지개를 바라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해안도로를 달리던 차는 협재 바닷가에 멈췄다. 나는 바다 건너에 보이는 비양도를 마주하고 섰다. 제주의 바람은 여전히 강하고 거친 파도는 나를 향해 달려왔다. 제주도에 바람은 살아있다. 거친 파도도 살아있다. 그리고 살아 있는 박물관 속에 우리 가족이 함께하는 여행의 추억도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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