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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Feb 10. 2024

아이들과 헤어진 후 우리는 길을 잃었다

금능마을을 걷다

 

  제주도에서 네 번째 날이다. 네 식구가 함께 여행하는 마지막 날이기도 하다.

 전날 저녁엔 술을 좋아하는 우리 가족은 여행의 마지막 날을 핑계로 고기를 구워 술을 마셨다.

 해장도 할 겸 아침을 먹으려고 바닷가에 있는 식당으로 갔다. 여행 내내 거칠기만 하던 바다는 어제와 다르게 잠잠했다. 나는 내장탕을 먹으며 소주 한 잔 곁들여 속을 풀었다. 세 남자는 각자의 상황이 있어 마시지 못했다. 헤어져야 할 시간이 남아서 근처 카페에서 커피도 마셨다. 우리는 작은아들은 직장에 큰아들은 공항에 데려다주었다. 두 아들로 인해 꽉 찼던 차 안에는 우리 부부만 덩그러니 남았다. 텅 빈 것 같은 차 안을 둘러보는데 가슴 한편으로 제주의 바람이 휑하니 지나갔다.


 결혼하고 10년 만에 차를 샀다. 차종은 누비라였다. 우리 가족은 차의 이름에 걸맞게 이곳저곳을 누비고 다녔다. 남편은 운전을 하고 나는 옆에서 지도책을 펼쳐 놓고 길을 찾으며 여행을 다녔다.     

  어렸던 아이들은 어느새 성인이 되었다. 형제는 머리를 맞대고 핸드폰으로 검색하며 여행지와 맛집을 찾아다녔다. 여행하는 동안 우리 부부를 일일이 챙겼다. 그런 아이들과 헤어진 우리는 부모를 잃은 아이가 된 것 같은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아이들과 헤어진 후, 우리는 어디로 가야 할지 몰라 한참 동안 차 안에 그대로 있었다.

정신을 차리고 무작정 해안도로를 달려 보기로 했다. 한참을 달리는데 제주도의 검은 돌로 담이 쌓여있는 마을이 보였다. 돌담 안에는 집들이 아늑하게 들앉아 있다. 우리는 마을 입구에 차를 세웠다.


 우리는 두 손을 꼭 잡고 골목을 걸었다. 돌과 돌 사이엔 다육이들이 꽂처럼 피어 있다. 돌담 벽에는 아이들의 시와 그림이 매달려 있다. 그 풍경들은 걷는 내 발길을 자주 멈추게 했다. 아이들의 동화를 닮은 정서가 있고 어른들의 정성스러운 손길이 묻어 있다. 걷는 이들의 입가에 미소 짓게 하는 골목의 풍경 하나하나를 눈에 담았다.

 마을 앞에는 검푸른 바다가 끝없이 펼쳐있다. 너울거리는 파도 위에서 윤슬이 빛나고 있다.

 날카롭지만 따스한 햇살이 머물러 있는 아름다운 그 마을의 이름은 금능마을이다.     

 우리는 금능마을 앞 방파제에 서 있다. 끝없이 펼쳐진 바다를 바라보고 있다. 또 어디로 가야 하지? 아이들과 헤어진 우리는 길을 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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