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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Feb 13. 2024

내가 이방산으로 가는 이유

 얼음새꽃(복수초)을 이방산에서 처음 보았다.

도시에 살때부터 산을 좋아했던 나는 귀촌 후에 무료함도 달래 겸 집 근처에 있는 이방산으로 갔다. 이방산으로 오르는 길은 들머리부터 가파른 임도로 이어졌다. 비탈진 길을 오르느라 숨은 헐떡거리고 다리의 힘은 풀렸다. 물 한 모금으로 목을 축이며 거친 숨을 달랬다.  귀는 계곡으로 흐르는 물소리를 따라갔다. 눈은 벌거벗은 나무 아래에 깔린 갈색 낙엽들을 보고 있다. 노란색 꽃들이 낙엽사이로 뾰족이 고개를 내밀고 군락을 이루고 있다.

 그때가 2월 말쯤이었다. 봄이 되면 제일 먼저 핀다는 매화의 소식도 없는데 벌써 무슨 꽃이 피었지? 나도 모르게 내 발은 어느새 낙엽을 밟고 있다. 신비롭기도 하고 이쁘기도 한 그 꽃밭에 한참 동안 주저앉아 있던 기억이 있다.

그 꽃이 복수초(얼음새꽃)라는 것은 한참 후에 알았다.

집에 와서도 그 꽃이 눈에 밟혀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그곳을 찾았다. 그리고 해마다 2월 중순이 되면  그곳을 찾는다. 얼음새꽃이 지고 초록의 싹이 나기 시작하면 히어리꽃이 나뭇가지에 대롱대롱 매달려 곡예를 시작한다. 그 옆에서 생강나무에 핀 꽃이 향기를 뿜어내며 벌들을 불러들인다. 햇살의 파편들이 얼레지 꽃을 향해 떨어진다. 파편의 잔해는 얼레지꽃들에게 보라색  발레복을 입힌다.  발레복을 입은 꽃들은 다리를 꼿꼿이 세우고 공연을 시작한다. 나는 또 그들만의 공연에 관객이 된다. 그들의 공연이 끝나면 현호색꽃들이 카펫처럼 펼쳐진다. 나는 또 그들이 보고 싶어 그곳으로 달려간다. 행여나 여리디 여린 꽃 한 송이라도 밟을세라 춤을 추듯 까치발 걸음을 옮긴다. 산 중턱에 피어 있는 진달래꽃은 그런 내 모습을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다. 먼당(산마루의 방언)에는 지리산 주 능선이 너울거리고 있다.


 며 칠 전, 지인에게서 이방산에 노란 얼음새꽃이 피고 있다는 소식이 왔다. 소식을 들은 나는 이방산으로 달려갔다. 이방산의 얼음새꽃은 이제 막 고개를 내밀기 시작했다.

 이방산을 다녀온 후, 유록의 이방산을 상상하는 내 가슴은 어느새 두근두근 설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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