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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Mar 23. 2024

상처의 해독제는 진심을 담은 그대의 사과입니다


 늘 술을 즐겼던 나지만 오래도록 술을 멀리 했습니다. 요즘  술을 찾는 횟수가 잦아졌습니다. 애써 잊으려 했는데

그냥 잘 지내봅시다.라는  문자 하나가 다시 술을 찾게 했습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독한 술에 취한 시간입니다.  평소 남들에게 보이는 내 모습은 독한 사람입니다. 스스로 그렇게  보이려고 포장하고 살았습니다.  도시에서의 삶은 포장 안에 숨겨진  상처 투성이었지만 보이고 싶지 않아 이 악물고 살아냈지요.
 귀촌은 그렇게 살아내는 삶에 지쳐 선택한 내 인생에 마지막 도전이었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늘 일기를 썼습니다. 작가를 희망하지는 않았지만  글쓰기는 내 삶의 일부였습니다. 삶을 살아 내느라 포기하고 살았던 나는 글에 갈증을 느꼈습니다. 가슴이 버석버석 타 들어갔습니다. 그럴 때마다 숲을 찾았습니다. 방향을 잃고 헤매던 중 지방자치제에서 운영하는 글쓰기 수업이 있다는 것을 알고 용기 내어 신청했습니다.  글쓰기를 배우며 솔직하게 썼던 글이 상상 이상으로 칭찬을 받았습니다. 칭찬이 어색한 내게는 엄청난 희 열였지요.
그 이후, 글을 쓰는 것에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글쓰기에 대한 기본 지식도 없던 나는  생각나는 대로 거침없이 글을 썼지요. 그 시간은 자존감이 바닥이었던 내게 자존감을 세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귀촌 후, 그럭저럭 살아내던 삶이  다시 꿈을 꾸기 시작했습니다. 욕심을 비우고 마음을 채우려 노력했습니다
작가를 꿈꾸지 않았습니다. 그저 귀촌의 삶을 글로 풀어내고 싶었습니다. 그렇게 마냥 행복할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세상의 삶이 어디 그리 만만하던가요?
시샘의 눈일까요? 아니면 맑은 물을 휘젓고 싶은 어린아이의 호기심일까요?
글을 쓰면서 마음을 치유하고 있던 내 가슴에 화살촉 보다 더 날카로운 것이 덤벼 들었네요.
내 가슴에 박힌 못 하나쯤이야 까짓거 하며 빼 버리면 그만일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가슴에 박힌 것은 알량한 못이 아니었습니다. 상대가 쏘아 버린 화살촉에는 진실을 왜곡하는 독이 가득 묻어 있었나 봅니다.  휘청휘청 정신을 차릴 수가 없습니다. 제게 필요한 해독제는 진심을 담은 그대의 사과입니다. 하지만 굳이 그 해독제를 구하려고 노력하지 않겠습니다. 구할 수 없다면 차후의 해독제는 시간이겠지요. 그 시간에 다른 길을 찾아보렵니다. 

그 길이 구불구불한 오솔길이더라도 그 길을 기꺼이 즐기며 걷겠습니다.
제가 다시 걸어가는 그 길에 용기와 희망을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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