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거인 Mar 24. 2024

큰 아들의 첫 차

 

자식자랑을 하면 팔불출이라 한다지요.

그럼에도 부끄럽지만 자랑 한번 해 보고 싶습니다.


 큰아들은 아빠 바라기입니다. 3.0kg으로 태어난  아이는 예민했습니다. 작은 소음에도 놀라며 깊은 잠을 자지 못했지요. 그런 아이가 아빠 품에서는 쌔근쌔근 참 잘 잤어요.
 낯가림이 심한 아이는 아빠가 출근하면 엄마를 곁을 떠나지 못하는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아이가 영민했는지 걷는 것도 빠르고 말도 빨리 배웠지요. 엄마를 닮은 키만 빼고는 또래 아이들보다 모든 것이 빨랐어요.
아이는 발가락이 여섯 개라는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났어요. 18개월 때 새끼발가락을 떼어내는 수술을 했어요.
워낙 예민한 성향이었던 아이는 수술 이후 일찍 떼었던 기저귀를 다시 찼어요. 말하는 법을 잊은 아이는 엄마 등에  껌딱지처럼 붙어 지냈어요.
병원에서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하더군요.
아이는 어린이 프로그램인 뽀뽀뽀를 좋아했어요. 그 시간만 되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텔레비전 앞에 인형처럼 앉아 있었지요. 뽀뽀뽀를 보며 글을 깨친 아이와 소통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은 엄마뿐이었지요. 아이와 엄마는 서로 손바닥에 글씨를 써  가며 소통했어요.
엄마는 매일 아이와 마주 앉았습니다. 종이에 글씨를 크게 써 놓고 글자 모양을 보며 입 모양을 고쳐 주고 발음할 때 혀를 어떻게 굴려야 하는지 알려 주었습니다. 어눌하지만 다행히 말문이  트이기 시작했습니다. 세 살짜리 아이가  글씨를 스스로 깨치더니 숫자도 100까지 알려 주며 규칙을 알려 주었더니 그 자리에서 1.000의 숫자까지 파악해 버리는 아이였습니다.
세상의 모든 부모들이 그렇겠지만 엄마는 아이가 천재인 줄 알았습니다.
아이 덕분에 엄마는 목에 늘 깁스를 하고 다녔지요. 

등학교 2학년 때 조심스럽게 발가락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다행히 아이는 유전자의 문제라며 담담하게 받아들이더군요.



  아빠 바라기 아들은 해군이었던 아빠를 따라 해군에 지원하려 했지요. 하필이면 그때 천안함  사태가 벌어졌지요. 결국 육군으로 제대했습니다.
그 흔한 과외 한 번 안 하고 학원도 안 다니며 스스로 공부해서 한양대 물리학과에 입학하더군요.
군대를 제대하더니 올 A+로 졸업하더군요.
  다른 회사를 추천했지만 아빠가 다녔던 삼성에 입사하겠다며 다른 회사는 염두에 두지도 않더군요.
삼성에서 장학금을 받으며 카이스트대학원을 졸업했습니다.
 그리고 올 3월에 과장이라는 직책을 임명받았습니다. 과장이라는 직책을 맡더니 중고차 이긴 하지만 떡하니 차를 한대 구입했네요.





그리고 어제 부모님께 인사한다며 소고기를 바리바리 사들고 내려왔습니다. 오늘 저녁엔 제주도에서 작은아들이 올라옵니다.
 네 식구 모이면 또 편이 갈리겠지요. 큰아들은 아빠와 소곤소곤, 작은아들은 엄마와 티격태격, 내일은 네 식구 모여 마당에 숯불을 피우고 소고기를 구워야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상처의 해독제는 진심을 담은 그대의 사과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