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거인 Jul 23. 2023

너와 내 가 하나 되어

남편에게 보내는 편지

 어느 날 너는 긴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서 내게로 왔어. 환하게 웃는 네 모습에 첫눈에 반해버렸지. 다방에 마주 앉아 어색하게 앉아 있는 내게 나룻배를 태워 준다며 한강으로 데려갔지. 배에 올라앉아 노를 저으며 흐르는 물결 따라 내려갈 땐 가슴이 두근두근 설렜어. 그런데 올라올 때는 거친 물살 때문에 배에서 내려 힘으로 밀어 올려야 했지. 그때가 시월이었는데도 땀을 쏟아내던 너, 땀방울이 날렵한 턱선에 모여 강물로 떨어지던 그 모습이 왜 그리 멋져 보였을까?
  
 네가 군에 입대하고 무작정 우리 집에 찾아온 날이 생생해. 하얀 해군복을 입고 씩씩하게 걸어 들어오는데 칙칙했던 시골집이 환해졌어. 35개월의 군 복무를 마치고 일 년 후, 결혼하면서 마당을 가운데 두고 열두 가구가 사는 집에 방 한 칸을 구했지. 부엌에 수도가 없어서 마당에 수도를 함께 써야 하는 집, 가구 수가 많아서 빨래도 날짜를 정해놓고 했지. 내가 빨래를 비비면 너는 받아서 헹구었어. 우리는 가난했지만 행복했어. 기억나니? 마당이 넓었던 그 집….
 
 월세방에서 전세로 옮겨 다니다가 10년 만에 집을 장만했어. 스물여섯 평 아파트로 이사하던 첫날 등기부등본을 내밀며 알뜰하게 살아준 덕이라며 고맙다고 눈물을 글썽였지. 어느 날, 현관문을 열고 들어오면서 가슴에서 빨간 장미 한 송이 꺼내주던 너. 낯가림이 심해 사람을 잘 사귀지 못하는 나를 위해 샀다며, 노란 장미를 다음날은 분홍 장미를 내밀며 환하게 웃던 그 모습은 아직도 눈에 선해,
 
IMF이후, 국내기업들이 인건비가 싼 중국으로 몰려가 버리고 직장을 잃었어. 낙심하는 너를 보며 ‘고민하지 마. 우린 젊고 건강하니까. 트럭 한 대 사서 채소 장사라도 하자.’고 하니까 환하게 웃었지.
다시 직장을 구했지만 그마저 중국으로 옮겨갔지. 직장을 알아보던 너는 시내버스 운전을 하겠다며 마을버스부터 시작했어. 그런데 졸음운전으로 전봇대를 박는 사고가 났지. 사고의 충격으로 어깨가 축 늘어져 있는 너를 볼 수가 없었어. 그런 너에게 용기를 주고 싶어서 언젠가 가족여행을 갔던 무릉계곡에 가자고 했지. 아이들이 어려서 오르지 못했던 두타산과 청옥산을 오르기 위해 두 시에 숙소를 나섰어. 칠흑 같은 어둠을 전등 불빛에 의지한 채 정상을 향해 걸었어. 사위가 어두워 보이지 않는 길을 더듬으며 정상에 도착했을 때, 여명이 밝아오면서 바다에서 붉은 태양이 힘차게 떠올랐어. 아! 그때의 감동은 너와 내가 아닌 우리였기에 가능했던 거야. 내 어깨에 손을 얹은 너는 말없이 붉은 해만 바라보고 있었지.

  나에게도 시련은 찾아왔어. 산에 미쳐있던 나는 너의 만류를 뿌리치고 산에 올랐다가 바위에서 떨어져 등뼈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했지. 움직이지도 못하고 천장만 보고 누워있는 내 옆에서 손과 발이 되어준 너, 그러면서도 짜증 한번 내지 않아 병원 생활이 힘들지 않았어. 4주 만에 등뼈 고정수술을 하고 일어나 앉을 수 있었지. 한 달 동안 수액으로 버티던 나는 네가 떠 주는 음식을 조금씩 먹게 되었지. 오랫동안 비어있던 속에 음식이 들어가자 지독한 변비에 걸리고 말았어. 그때 주저하지 않고 내 항문을 파주던 너.
사람들은 정상인으로 살 수 없다고 했지만 나는 포기하지 않았어. 옆에서 재활운동을 열심히 도와준 덕분에 내 몸은 빠르게 회복했지.




 

사고가 나고  일 년이 지나면서 우리의 꿈이었던 전원생활을 하려고 지리산 아래 산청으로 귀촌했어. 가지고 있는 돈으로는 땅 사고 스무 평짜리 집 한 채 겨우 지을 수 있었어. 그래서 우리는 살면서 하나하나 채워가기로 했지. 내 생각이 네 손을 거쳐 멋지게 살아난 집은 나날이 예뻐지고 우리의 이야기로 채워졌어. 그러면서 웃는 날도 많아졌지.
 
너와 나 두꺼운 벽을 쌓고 등을 돌린 적도 있었지만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한 곳을 보며 걸어왔어. 우리가 걷는 이 길의 끝이 어디까지인지 모르지만, 지금처럼 하나 되어 두 손 꼭 잡고 걸어가자.
‘멋진 내 남자 사랑해!’

매거진의 이전글 영화 톰 행크스 주연의 '터미널'을 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