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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Apr 15. 2024

그대 그리고 나




우리 부부는  밭에 거름을 내고 흙을 뒤집는 일에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는다. 삽과 쇠스랑 그리고 건강한 몸만 있으면 된다며 일명 무대뽀 농법이라 부른다. 몸으로  흙을 일구는 과정에서 건강한 흙이 뿜어 내는 에너지는 고스란히 몸이 흡수한다.

거름을 옮기고 땅을 뒤집는 일은 남편이 했다. 풀을 뽑고 흙을 고르는 일은 내가 했다.  한 여름을 방불케 하는 더운 날씨에 땅을 일구느라 흘린 땀이 온몸을 적셨다. 잠시 쉼을 하며  맥주 한 캔을 나눠 마시는데 문득 지나온 일들이 시나브로 스쳤다.


  "걱정하지 마! 당신하고 나만 있으면 세상 그 어떤 것도  옮길 수 있고 뭐든 다 할 수 있어."
 이 말은 몇 년 전 창고 안에 있던 고추 건조기를 밖으로 빼내는 과정에서 위험하지 않겠냐고 걱정하는 내게 남편이 한 말이다.
건조기가 창고 안에 있으니 사용하는데 여러 가지로 불편했다. 남편은 비가림 지붕을 만들어 밖으로 옮기기로 했다.
두 칸짜리 건조기는 영업용 냉장고보다 키도 크고 덩치도 컸다. 바퀴가 달렸으니 문 앞까지 이동하는 것은 수월했다. 문제는 문턱과 두 개의 가파른 계단이다. 남편은 두껍고 긴 나무를 눕혀 문턱 앞에  비탈길을 만들었다.
계단에도 나무를 길게 눕혀 바퀴가 지나갈 수 있는 길을 만들었다.
하지만 혹여라도 삐끗하면 무거운 건조기는 그대로 패대기다. 나는 밖에서 그렇게 되지 않도록 건조기의 중심을 잡아주면 되는 것이다. 문 안에서 남편이 외친다.
"당신은 중심만 잡아주면 돼! 힘은 내가 쓸게!"
그날 우리 부부는 건조기를 원하는 장소에 무사히 안착시켰다.


우리는 살면서 늘 그랬다. 대기업에 다니던 남편은  IMF 이후, 직장에서 정리 해고를 당했다. 나는 어깨가 축 늘어져 있는 남편에게 이렇게 말했다.
"괜찮아! 우리 아직 젊고 건강하잖아! 트럭  한 대 사서 야채장사라도 하면 애들 둘 못 가르치겠어?"
내 말에 환하게 웃던 남편의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다시 기운을 차리고 중소기업을 전전하던 남편은 시내버스 운전을 해 보겠다고 했다.
8개월 만에 나의 염려는  현실이 되었다. 졸음운전으로 사고를 낸 것이다. 다행히 인명사고는 없었다.
남편의 어깨가 다시 처졌다. 나는 남편을 끌고 강원도 삼척에 있는 두타산으로 갔다.
새벽 두 시, 렌턴 불빛을 밝히고 칠흑같이 어두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두타산 정상에 오르니 산 아래 동해 바다가 보였다. 수평선 끝에서 붉은 해가 힘차게 떠 올랐다. 내가 두타산을 찾은 이유는 남편에게 이 장관을 보여 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떠 오르는 해를 보며 남편의 손을 꼭 잡았다.
"봐봐!  해는 매일 저렇게 떠 오른다. 우리 그동안 참 열심히 살았잖아. 우리에게 이런 일이 생긴 것은 잠시 쉬어 가라는 뜻인 것 같아. 우리 잠시 쉬었다가 매일 저렇게 떠 오르는 해처럼 또 열심히 살아 보자."

  나는 산에 갔다가 추락사고를 당했다.
장기는 파열되었고 등뼈가 부러지고 갈비뼈 8대가 부러졌다. 등뼈를 고정시키는 수술을 해야 하는데 폐에 물이 차서 물이 마를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고 했다. 나는 물이 마르는  한 달 동안의 시간을 천장만 보고 지냈다. 남편은 내 몸에 욕창이 생기지 않도록 두 시간마다 내 몸을 뒤집어 닦아 주었다. 심한 변비로 고통스러워하자 일회용 장갑을 끼고 내 항문을 팠다. 한 달 내내 옆에서 내 손과 발이 되어 주었다. 덕분에 나는 다시 건강하게 걸을 수 있게 되었다.

 귀촌 후, 남편은 목수 일을 배워 일을 다녔고 나는 삽과 곡괭이를 들고 포클레인 들어갈 수 없는 산으로 갔다. 매일매일 돌 산을 일구어 밭을 만들었다.


 우리는 부부로 살면서  힘들 때는 서로에게 어깨를 내어 주었다. 좋은 일이 생길 때는 함께 웃으니 행복은 배가 되었다.
그대 그리고 나, 우리는 35년 지기 부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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