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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May 01. 2024

오지랖도 병이다


 우리 집 뒷산에는 취나물이 지천이다. 귀촌 무렵 땅을 구입했을 때는 포클레인으로  파헤친 상태여서 아무것도 자라지 않았다. 나는 그 땅에 이산 저산 다니며 취나물을 캐다 심었다. 장에 나가 씨앗을 사다 뿌렸다.

해가 지나면서 씨앗들이 떨어져 자리를 잡으니 우리 부부가 먹고도 넘쳐났다. 


 늦은 오후, 취나물을 뜯으려고 산으로 올라갔다.  바구니에 한가득 채운 바구니를 들고 낑낑거리며 내려왔다. 내려오니 일찍 퇴근한 남편은 잔디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풀을 뽑고 있었다.

남편은  취나물이 가득 담긴 바구니를 보며 물었다.
 "어제도 잔뜩 삶아 냉동실에 넣더니 그걸 다 언제 먹으려고?"
 "이건 데칠 거 아녀. 친구가 자연산 취나물을 먹어 본 적 없다길래 보내 주려고."
남편은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더니 퉁박을 준다.
 "오지랖도 병이다. 요즘 시장에 가면 잔뜩 있을 건데 사 먹으라면 되지. 택배비도 안 나오겠다."

남편의 핀잔을 들은 나는 마음이 상했다.

'같은 이름을 가진 나물이라고 그게 다 같은 나물이 이야? 시중에 나오는 봄나물들은 대부분 하우스에서 거름을 먹고 자랐고 내 나물은 산에서  부엽토를 먹고 햇볕을 받으며 자란 건데 영양분이나 맛이 어떻게 똑같냐!'라고 반박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다음날, 친구에게 택배를 보내려고 포장을 하는데 밭에 넘쳐나는 겨울 상추가 생각났다. 상추를 좋아하는 나는 해마다 먹고 넘치게 심는다.

하우스에서 겨울을 버틴 상추를 옮겨 심었다. 상추는 다시 뿌리를 내리고 잘 자라고 있다.
올해도 상추는 텃밭 한가득이다.
겨울을 이겨낸 상추는 향과 맛, 식감이 일품이다. 년 중 이맘때 먹는 상추가 제일 맛있다.

 친구에게 취나물을 보내면서 시중에서 구하기 힘든 겨울 상추도 같이 보내기로 했다.  밭에 가서 줄기에 달린 잎을 모두 따고 보니 줄기에 머리카락만 남은 누드 상추가 되었다. 옷을 홀딱 벗은  누드상추가 되었지만  이틀 정도 지나면 상추잎은 내 얼굴보다 더 크게 자라 또 먹을 수 있다.

 택배를 보내려고 적당한 박스를 골라서 신문지를 깔았다. 취나물을 넣고 신문지를 깔고 상추를 넣고 이것저것 텃밭 나물 몇 종류 더 넣어 택배를 쌌다.
나물을 뜯고 택배를 싸는 일로 한나절을 보냈다.  괜한 오지랖을 부렸나? 하는 생각 머리를 스치는데  '오지랖도 병이다.'라고 했던 남편의 말이  떠 올랐다. 그 말이 자꾸 귀에서 쟁쟁거린다.  피식피식 웃음을 뱉어냈다.  포장을 하며 들어주는 이 없으니 혼잣말을 한다
'에라! 모르겠다. 내 오지랖에 친구가 행복하면 그만이지.'
행복해하는 친구의 얼굴을 떠 올리며 나물상자를 차에 싣고 탁배사로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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