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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May 11. 2024

예치골은 나만의 카페다





 텃밭에 열무가 제법 먹기 좋게 자랐다. 김치를 담그려고 뽑아서 마당 그늘진 곳에 자리를 잡았다. 비탈길이 요란하더니  택배차가 마당으로  들어서더니 두 개의 택배 박스를 내려놓고 떠났다. 내가 주문한 적이 없으니 남편 거다. 남편은 필요한 기계나 자재들의 90프로를 인터넷 주문을 한다. 나는 당연히 기계려니 관심을 두지 않았다.
 주방에서 저녁 준비를 하고 있는데 씻고 나온 남편이 부른다. 거실로 나가 보니 남편은 택배박스를 뜯어 거실 바닥에 펼쳐 놓고 나를 보며 싱긋 웃는다. 바닥에는 한 개의 앰프와 네 개의 스피커 그리고 동그랗게 말아진 전선이 펼쳐져 있다.
"이게 뭐야?"
남편은 손가락으로 일일이 짚어 가며 설명을 해준다.
"이건 앰프, 이건 스피커, 이건 연결할 선"
며칠 전. 낭도 여행길에 비를 만났다. 비를 피해 들어간 카페는 바다의 뷰가 아주 멋진 곳이었다. 바다에 비가 내렸다. 클래식 음악이 잔잔하게 흘러나왔다.
  커피를 마시던 남편이 뜬금없이 우리 집에도 스피커 설치 할까?라고 묻는다.
 헐, 이 남자가 뭔 일이래?라는 생각이 들면서 낯선 남자가 내 앞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집 주변에 스피커를 설치해 달라고 몇 번씩 이야기를 해도 듣지 않던 남편이었다. 그랬던 사람이 먼저 말을 하니 남편이 낯설었다.  생각하지 않았 남편의 제안에 나도 모르게 이상한 말이 툭 튀어나왔다.
 "당신 어디 아파?"
 남편은 눈을 동그랗게 뜨며 "아니!"라고 대답했다.
 "그런데 뭔 일이래? 내가 집 짓고 나서 마당에 스피커 설치해 달라고 할 땐 시끄러워서 안된다더니  그런 말을 하니 어디 아픈 거 아니면? 갈 때가 된 건가? " 라며  검지 손가락을 얼굴 옆으로 가져가며 빙빙 돌렸다. 


 여행에서 돌아온 남편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어버이날이 돌아오고 있었다.
뭐 필요한 거 있어요? 아이들에게서 카톡이 왔다.
남편은 보고 있던 앰프의 사진을 캡처해서 보냈다.

일이 일찍 끝난 남편은 오후 3시쯤 퇴근을 했다.
곳곳에 스피커를 설치하고 선을 연결하기 위해 지붕으로 올라갔다.
지붕으로 마당으로 집 뒤에 텃밭으로 부지런히 돌아다녔다.

그 사이 해는 서쪽 능선으로 넘어가고 코발트블루의 어둠이 자박자박 마당에 들어서고 있었다.
나는 하루종일 김치를 담그느라 동동거렸다. 뒷정리를 하고 있는데 거실에서 남편이 부른다. 설치가 끝났다며 시운전을 해보라는 것이다.
라디오는 수신상태가 좋지 않아 잡히지 않았다.
음악을 들으려면 유심칩에 음악을 넣거나 블루투스로 핸드폰과 연결해야 한다. 나는 사용하지 않고 처박아 두었던 오래된 핸드폰을 꺼냈다.
 핸드폰과 앰프를 블루투스로 연결하고 유튜브에서 듣고 싶은 음악을 찾아 플레이했다.
음악이 들리나 확인하려고 마당에 있던 남편이 엄지 손가락을 치켜들며 회심의 미소를 보냈다.
우리는 저녁 먹는 것도 잊은 채 마당을 한참 동안 서성거렸다.
  그동안은 밖에서 일을 할 때마다 핸드폰과 블루투스 스피커를 가방에 넣어 들고 다녔다..
 수신상태가 좋지 않아 핸드폰에 라디오 앱을 다운로드하여서 들었다. 아쉬운 대로 들을만했지만 이동할 때마다 들고 다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덜렁이인 나는 가방을 아무 데나 던져 두곤 했다. 가끔 수신이 끊어지면 흙 묻은 손으로 폰을 만지다 보니 내 핸드폰은 흙먼지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그런 나에게 남편은 핸드폰을 소중히 다루지 않아 금방 고장을 낸다고 핀잔을 주곤 했다.
이제는 그럴 일이 없어졌다. 사용하지 않는 폰에 음악전용 앱을 다운로드하였다. 이제 집에서 틀어 놓고
밭에 나가서 일을 해도 음질 좋은 음악을 들을 수 있다. 커피를 내려 마당을 서성이며 분위기 좋은 음악도 들을 수 있다.

 


스피커를 설치하고 첫날의 아침은 김광석의 노래다. 노래는 새벽바람에 실려 나와 함께 마당을 서성인다. 여기를 가도 저기를 가도 음악이 흘러나온다. 커피를 내리고 감자를 찌고 커피를 내렸다. 밭에서 딴 싱싱한 딸기를 함께 데크에 있는 테이블에 아침을 차렸다. 커피 향이 잔잔한 음악에 실려 잔디 마당으로 내려앉는다. 음악을 들으며 아침을 즐기고 있는 예치골은 나만의 카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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