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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May 15. 2024

불을 끄세요






예치골의 밤이 깊어간다.
남편과 나는  저녁 운동을 하기 위해 비탈길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다.

우리는 밤을 그대로 느끼려고 손전등없이 걷고 있다. 가로등 하나 없지만 우리는 이내 밤에 익숙해 졌다. 숲에서 반딧불이가 날아다닌다.  하늘엔 별이 총총 빛나고  있다.
소쩍새가 울고 가끔 부엉이가 우는 소리만 들릴뿐 사위는 고요하다. 그런데 갑자기 예치골을 뒤흔드는 비명소리가 숲 속에 울려 퍼진다.
아  악! 악!  아아아!  야!  

비명 소리는 아래에서 들렸다. 남편과 나는 오르던 길을 돌아 소리가 나는 곳으로 갔다. 집 아래에 있는 소형 주택에 불이 커져 있다. 그 집은 진주에 사는 가족이 주말주택으로 사용하는 집이다. 여름이면 민박을 주는지 낯선 사람들이 와서 놀다가고는 했다.

상황을 보니 밥을 먹고 있었는지 테이블 위에서는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있다.  주변에는 네 명의 여자들이 우왕좌왕하며 소리를 지르고 있다.이번에는 젊은 여자들만 놀러 왔나 보다. 
전등 불빛 아래에서 커다란 나방이  활개를 치며 날아다닌다.
어떤 여자는 거실에서 고개만 내밀고 소리를 지르고, 어떤 여자는 불빛 아래에서 수건을 흔들고 있고, 어떤 여자는 테이블에서 저만치 떨어져 소리를 지르고 있다. 고기 굽는 냄새가 코끝을 자극한다. 고기를 구워 밥을 먹고 있는데 불빛을 좋아하는 나방이 날아와 훼방을 놓은 듯하다.
남편과 나는 멀찌감치서 그 상황을 재미있게 지켜보고 있다.
나방은 위로 아래로 옆으로 활개를 치며 신나게 날고 있다. 공포에 질린 여자들의 비명은 빛의 속도로 숲 속으로 날아간다.
나는 가만히 그녀들 근처로 다가갔다. 그리고 이렇게 외쳤다.
 "아 가 씨!  불을 끄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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