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과 수업이 끝난 학생들, 방위아저씨들(공익근무요원)까지, 우르르 쏟아져 나온 정거장은 그야말로 북새통이었다. 많은 사람 속에 중학교 2학년인 나도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 버스는 흙먼지를 일으키며 들어왔다 떠나기를 반복했다.
버스가 정거장에 들어올 때마다 두 눈이 버스 앞 유리에 꽂혔다. 한번 놓치면 두 시간 이상을 또 기다려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였다. 저만치에 낯익은 비틀거림이 보였다. 아버지였다. 가슴이 쿵! 내려앉았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저 사람이 내 아버지라니, 혹여 친구들에게 들킬세라 재빨리 등을 돌려 사람들 사이로 파고들었다. 제발 아는 척하지 말고 그냥 지나쳐주길 빌었다. 그런 바람에도 불구하고 아버지가 내게로 걸어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퀴퀴한 땀 냄새와 함께 지독한 술 냄새가 바로 등 뒤에서 훅 끼쳤다.
“을순아!”
아버지 목소리는 삭아서 축 늘어진 고무줄 같았다. 못 들은 척 고개를 숙이고 발끝으로 땅을 콕콕 찍어대며 못 들은 척했다. 아버지는 더 크게 이름을 불렀다. 하는 수 없이 고개를 들어 아버지를 올려다보았다. 비쩍 마른 얼굴에 움푹 파인 눈, 쌍꺼풀지고 퀭한 그 눈이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초점 흐린 그 눈빛이 보기 싫어서 고개를 돌려버렸다.
"우리 을순이, 애비가 맛있는 거 사줄까?"
고개를 숙인 채 애먼 땅바닥에 헛발질을 해 댔다.
“먹고 싶은 거 없어요. 버스 기다려야 해요.”
술 취한 아버지가 창피해서 빨리 앞에서 사라지기만을 기다렸다. 아버지는 땀에 젖은 내 교복자락을 꽉 움켜쥐더니 막무가내로 잡아끌었다. 끌려가지 않으려고 버티면서 울먹울먹 내뱉었다.
“먹고 싶은 거 없다구요!”
아버지는 정류장 한쪽 귀퉁이에 있는 '마석상회'로 나를 끌고 들어갔다. 학생 몇몇이 가게에서 군것질을 하고 있었다. 가게 안을 둘러보던 아버지는 아이스크림 냉장고에서 가장 비싼 ‘포미콘’을 집어 들었다. 허리에 찬 전대에서 만 원짜리 한 장을 꺼내 주인에게 내밀었다. 두둑한 전대를 보니 이번에도 소가 좋은 값에 팔렸나 보다.
아버지는 주변마을을 돌아다니며 삐쩍 마르고 비실비실한 소를 헐값에 샀다. 소를 집으로 끌고 와 사료와 여물을 섞어 소죽을 끓여서 아주 잘 먹였다. 한두 달 지나면 살이 붙고 털빛은 반질반질 윤기가 흘렀다. 그렇게 공들여 키운 소를 다시 우시장에 내다 팔아 이문을 남겼다.
아버지는 콘을 싸고 있는 종이를 벗겨서 손에 쥐어주며 말했다.
“녹기 전에 빨리 먹어라.”
선풍기도 없는 가게 안 열기에 콘이 빠르게 녹아내렸다. 이내 하얀 물이 손등을 타고 바닥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마지못해 흐르는 액체를 핥아먹기 시작했다. 달달한 액체가 입속으로 스며들었지만 맛을 느낄 수가 없었다.
“버스 놓치지 말고 잘 들어가라.”
아버지가 먼저 가게를 나갔다. 손에 범벅이 된 포미콘을 휴지통에 처박고 나왔다. 밖으로 나와 두리번거리며 아버지를 찾았다.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버스가 도착했다. 서로 먼저 타려고 버스출입문 앞으로 우르르 몰려들었다. 작은 체구로 이리저리 체이다가 키가 큰 사람들 옆을 파고들어 겨우 버스에 올랐다. 버스 안은 엄청난 열기와 땀내로 숨쉬기가 힘들었다. 버스가 덜컹거리며 비포장도로를 달리다 모퉁이를 돌 때면 몸이 이리저리 쏠렸다. 넘어지지 않으려고 의자 손잡이를 잡았다 놓을 때마다 손바닥이 끈적거렸다. 사람들이 하나, 둘 내리고 숨통이 트일 때쯤 나도 내렸다.
집으로 가는 길에 폭이 넓은 개울이 있고 징검다리가 가로질러 놓여있다. 냇가 커다란 돌 위에 쪼그리고 앉아 끈적거리는 손을 냇물에 씻었다. 손을 씻으면서도 창피했던 마음이 사라지지 않아 악을 쓰며 돌팔매질을 해댔다.
개울을 건너면 흙길이 이어졌다. 흙길은 한여름 열기에 부글부글 끓어올랐다. 이마에서부터 흘러내리는 땀에 교복이 흠뻑 젖었다. 집에 도착해서 교복을 벗으니 왼쪽 등에 시커먼 손자국이 선명하게 찍혀있었다. 버스정류소에서 억지로 잡아끌던 아버지 손자국이었다. 그 손자국을 보니 가슴 저 아래서부터 꾸역꾸역 설움이 밀려 올라왔다. 우물가로 가서 교복을 빨았다. 비누를 치대가며 시커먼 손자국을 비비는데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5년 후, 아버지는 암이라는 놈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셨다. 내 손에 포미콘을 쥐어주던 그때처럼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한여름이었다. 일찍 홀로 된 노모와 어린 일곱 남매를 남겨두고 쉬이 눈을 감지 못하셨을 것이다. 빠듯한 살림에 홀로 열 식구를 책임져야 했던 그 어깨가 얼마나 무거웠을지 부모가 되어서야 헤아릴 수 있었다. 당신만큼이나 비쩍 마른 소를 끌고 집으로 들어오시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날 마석상회에서 포미콘을 쥐어주며 흐뭇해하시던 아버지 얼굴을 잊을 수가 없다. 내 교복에 묻었던 손자국은 오래전에 지워졌지만 가슴에 찍힌 손자국은 지워지지 않고 더 진하게 자리를 잡고 있었다. 술에 취해 비틀거리며 살 수밖에 없었던 고단한 삶을 이제야 이해할 수 있는 나이가 되었건만 아버지는 내 곁에 없다. 술에 취해 비틀거려도 좋다. 축 처진 어깨여도 좋다.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