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여사! 비 온다.

장마철이 되면 그녀는 들깨 모종을 옮겼다.

by 작은거인


그날도 비가 내렸다. 엄마는 들깨 모종을 뽑아 세숫대야에 가득 담아 놓고 나를 불렀다. 비료 포대를 낫으로 주욱 찢어 내 머리에 씌워 주며 따라오라고 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산 밑에 있는 밭으로 데리고 갔다. 모종이 담긴 대야를 내 앞에 놓더니 세 가닥씩 잡아서 머리를 맞추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맞추어 엄마 손에 건네주면 그것을 받아 호미로 땅을 파서 심었다. 다음날 또 다음날도 엄마를 따라 들깨 모종을 심으러 갔다, 그날 이후 해마다 장마철이 되면 엄마와 함께 들깨를 심었다. 그녀가 내게로 왔다. 칠 남매 중 사이가 제일 좋지 않았던 나와 살겠다고 왔다. 신장암 말기로 십 년 넘게 고생만 하더니 결국 암이 온몸으로 전이되면서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그녀가 시한부 선고를 받자 형제들이 모였다. 형제들은 맑은 공기 마시며 시골에서 살다 보면 회복될지도 모른다는 명분으로 그녀를 내게 보냈다. 그녀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자연에서 살고 싶어 산청으로 귀촌한 첫해였다. 촌집을 구해 살면서 마을 사람에게 조그마한 밭을 얻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밭에 나가 들깨 모종을 옮기고 있는데 우산을 쓰고 그녀가 왔다. 비를 맞고 있는 내게 우산을 씌워 주며 지켜보던 그녀가 내 손에서 호미를 낚아챘다. 우산을 내게 건네고 허리를 숙이고 호미질을 시작했다. 들깨 모종 키를 윗부분에 맞추고 땅을 길게 파고 줄기를 비스듬하게 눕히며 흙을 덮었다. 다시 줄기를 세우며 흙을 돋아 감싸 주었다. 평생 농사만 짓던 그녀의 손놀림은 능숙했다. 나는 모종을 가지런히 정리해서 그녀 손에 건넸다. 줄기 반이 흙에 묻힌 모종은 키가 반토막으로 줄어들어 짱짱하게 서 있었다. 그렇게 해야 줄기에서 뿌리를 내려 튼튼하게 자란다고 했다. 호미를 든 그녀의 손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녀는 억척스럽게 농사를 지었다. 처마에 고드름이 녹아내리면 미적거리던 겨울은 뒷걸음질 쳤다. 훈풍이 서둘러 봄을 데리고 오면 그녀의 몸도 덩달아 바빠졌다. 겨우내 모아 두었던 소똥 두엄을 파헤쳐 삼태기에 담아 지게에 얹었다. 지게를 지고 밭으로 가서 군데군데 부려 놓았다. 두엄이 발효되며 나는 열기는 흡사 몽글몽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쇠스랑을 이용해 두엄이 잘 마르도록 밭 전체에 골고루 헤쳐 널었다. 아버지는 소등에 쟁기를 걸어 두엄이 흙과 잘 섞이도록 밭을 갈았다. 엄마는 그 밭에 고추를 심었다. 참깨도 심었다. 콩을 심고 들깨 모종도 옮겼다. 뜨거운 여름엔 이른 새벽부터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호미를 들고 밭에서 살았다. 그런 그녀가 마지막 말처럼 내게 “들깨는 좋은 거름 필요 없다. 호미 소리 듣고 자란다.”라고 혼잣말을 했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거름을 많이 하면 잎만 무성하게 자라 수확이 적고 척박한 땅에서는 번식의 본능으로 열매를 많이 맺는다. 풀에 치이지 않게 부지런히 뽑아 주고 관심 주며 보살펴야 한다. 그녀가 떠나고 여러 해 들깨 농사를 짓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 그녀가 내게 왔던 그해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들깨 모종 옮기는 법을 가르쳐주면서 가을에 들깨 터는 법도 가르쳐 준다고 했다. 예치골에 예쁜 집 짓고 같이 살자던 그녀는 딱 두 달 6월에 와서 8월에 떠났다. 아들만 편애하던 그녀와 난 늘 티격태격했다. 그래서 좋았던 기억이 별로 없다. 내게 와서 마지막을 살다 간 이유가 자신을 기억해 달라는 의미였을까. 화해의 의미였을까. 밖에는 빗소리 요란하다. 그녀가 텃밭에서 들깨 모종을 뽑고 있는 모습이 빗물에 아른거린다. “들깨는 호미 소리 듣고 자란다.” 그녀의 목소리가 거친 빗소리에 섞여 환청처럼 들려온다. “김 여사! 비 온다. 우리 들깨 모종 옮기러 가자.”

그날도 비가 내렸다. 엄마는 들깨 모종을 뽑아 세숫대야에 가득 담아 놓고 나를 불렀다. 비료 포대를 낫으로 주욱 찢어 내 머리에 씌워 주며 따라오라고 했다. 집에서 멀리 떨어진 산 밑에 있는 밭으로 데리고 갔다. 모종이 담긴 대야를 내 앞에 놓더니 세 가닥씩 잡아서 머리를 맞추라고 했다. 시키는 대로 맞추어 엄마 손에 건네주면 그것을 받아 호미로 땅을 파서 심었다. 다음날 또 다음날도 엄마를 따라 들깨 모종을 심으러 갔다, 그날 이후 해마다 장마철이 되면 엄마와 함께 들깨를 심었다.

그녀가 내게로 왔다. 칠 남매 중 사이가 제일 좋지 않았던 나와 살겠다고 왔다. 신장암 말기로 십 년 넘게 고생만 하더니 결국 암이 온몸으로 전이되면서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 그녀가 시한부 선고를 받자 형제들이 모였다. 형제들은 맑은 공기 마시며 시골에서 살다 보면 회복될지도 모른다는 명분으로 그녀를 내게 보냈다. 그녀에게 선택권은 없었다.

자연에서 살고 싶어 산청으로 귀촌한 첫해였다. 촌집을 구해 살면서 마을 사람에게 조그마한 밭을 얻었다. 비가 부슬부슬 내리던 날 밭에 나가 들깨 모종을 옮기고 있는데 우산을 쓰고 그녀가 왔다. 비를 맞고 있는 내게 우산을 씌워 주며 지켜보던 그녀가 내 손에서 호미를 낚아챘다. 우산을 내게 건네고 허리를 숙이고 호미질을 시작했다. 들깨 모종 키를 윗부분에 맞추고 땅을 길게 파고 줄기를 비스듬하게 눕히며 흙을 덮었다. 다시 줄기를 세우며 흙을 돋아 감싸 주었다. 평생 농사만 짓던 그녀의 손놀림은 능숙했다. 나는 모종을 가지런히 정리해서 그녀 손에 건넸다. 줄기 반이 흙에 묻힌 모종은 키가 반토막으로 줄어들어 짱짱하게 서 있었다. 그렇게 해야 줄기에서 뿌리를 내려 튼튼하게 자란다고 했다. 호미를 든 그녀의 손은 부지런히 움직였다.

그녀는 억척스럽게 농사를 지었다. 처마에 고드름이 녹아내리면 미적거리던 겨울은 뒷걸음질 쳤다. 훈풍이 서둘러 봄을 데리고 오면 그녀의 몸도 덩달아 바빠졌다. 겨우내 모아 두었던 소똥 두엄을 파헤쳐 삼태기에 담아 지게에 얹었다. 지게를 지고 밭으로 가서 군데군데 부려 놓았다. 두엄이 발효되며 나는 열기는 흡사 몽글몽글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모습을 연상케 했다. 쇠스랑을 이용해 두엄이 잘 마르도록 밭 전체에 골고루 헤쳐 널었다. 아버지는 소등에 쟁기를 걸어 두엄이 흙과 잘 섞이도록 밭을 갈았다. 엄마는 그 밭에 고추를 심었다. 참깨도 심었다. 콩을 심고 들깨 모종도 옮겼다. 뜨거운 여름엔 이른 새벽부터 어둑어둑해질 때까지 호미를 들고 밭에서 살았다.

그런 그녀가 마지막 말처럼 내게 “들깨는 좋은 거름 필요 없다. 호미 소리 듣고 자란다.”라고 혼잣말을 했다.

그때는 그 말이 무슨 말인지 몰랐다. 거름을 많이 하면 잎만 무성하게 자라 수확이 적고 척박한 땅에서는 번식의 본능으로 열매를 많이 맺는다. 풀에 치이지 않게 부지런히 뽑아 주고 관심 주며 보살펴야 한다. 그녀가 떠나고 여러 해 들깨 농사를 짓다 보니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

그녀가 내게 왔던 그해 유난히 비가 많이 내렸다. 들깨 모종 옮기는 법을 가르쳐주면서 가을에 들깨 터는 법도 가르쳐 준다고 했다. 예치골에 예쁜 집 짓고 같이 살자던 그녀는 딱 두 달 6월에 와서 8월에 떠났다.

아들만 편애하던 그녀와 난 늘 티격태격했다. 그래서 좋았던 기억이 별로 없다. 내게 와서 마지막을 살다 간 이유가 자신을 기억해 달라는 의미였을까. 화해의 의미였을까. 밖에는 빗소리 요란하다. 그녀가 텃밭에서 들깨 모종을 뽑고 있는 모습이 빗물에 아른거린다.

“들깨는 호미 소리 듣고 자란다.” 그녀의 목소리가 거친 빗소리에 섞여 환청처럼 들려온다. “김 여사! 비 온다. 우리 들깨 모종 옮기러 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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