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새벽바다를 보려고 상주 은비치해변을 찾았다. 그곳은 아름드리 울창한 솔숲과 유난히 하얀 모래로 유명한 곳이다. 쪽빛 넘실대는 바다를 보자 누구랄 것도 없이 환호성을 지르며 바닷물에 뛰어들었다. 바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고운 모래도 밟으며 조용한 아침 바닷가를 들썩이게 했다. 다음 여행지로 가기 위해 나오는데 ‘둘다섯 노래비’가 보였다. ‘둘다섯 멤버가 이곳에 왔다가 바다에 떠 있는 작은 배를 보고 만든 노래가 밤배였다’고 적혀있었다. 그 옆에는 노래를 감상하는 기계 한 대가 세워져 있고, 전면에 ‘둘다섯’이 불렀던 노래 제목을 나란히 적어 놨다. ‘밤배’라고 적힌 버튼을 누르자 노래가 흘러나왔다.
검은빛 바다 위를 밤배 저어 밤배
무섭지도 않은가 봐 한없이 흘러서 가네
노랫소리에 친구들이 하나둘 노래비 앞으로 모여들었다. 약속이라도 한 듯 다 같이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했다.
끝없이 끝없이 자꾸만 가면
어디서 어디서 잠들 텐가
아아 볼 사람 찾는 이 없는 조그만 밤배야
아버지가 병으로 몸져눕게 되자 일반 고등학교에 갈 수 없는 형편이 되었다. 어쩔 수 없이 모교에서 운영하는 야간고등학교에 진학하게 되었다. 집에서 가까웠지만 낮에는 공장으로 밤에는 학교에 가기 위해 기숙사에 들어갔다.
공장은 학교 운동장 건너편에 있었고 기숙사는 강당 아래 반지하에 있었다. 기숙사 문을 열자 퀴퀴하고 습한 냄새가 먼저 반겼다. 배정받은 방에 들어가니 방장인 3학년 선배가 방바닥에 비닐을 깔고 여러 종류의 과자를 쏟아놓고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기숙사에 모인 친구들은 빙 둘러앉아 과자를 먹으며 고향은 어디고 어느 중학교에서 왔는지 자기소개를 했다. 경기도는 물론 강원도, 충청도, 경상도, 전라도에서도 왔다. 심지어는 제주도에서 온 친구도 있었다. 모두 공부가 하고 싶어 모인 친구들이었다. 그렇게 열 명의 소개가 끝나자 선배는 기숙사 생활에 필요한 주의사항을 알려주었다. 그리고 제2의 교가라며 노래를 가르쳐 주었다. 그 노래가 ‘밤배’였다.
공장과 학교로 정신없는 생활이 익숙해질 즈음, 선배들의 분위기가 이상했다. 밤마다 몇몇이 모여 수군거리는 일이 반복되었다. 어수선한 분위기가 계속되던 어느 날, 출근하려고 일어나 보니 방장 언니를 비롯해 3학년 선배들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불안해하는 우리에게 2학년 선배들이 알려주었다. 그동안 노동착취를 심하게 당한 선배들이 항의하는 거라며 너희들은 가만히 있으면 된다고 안심시켰다.
선배들이 요구하는 내용은 이랬다.
일요일 근무는 시키지 말아라.
학교수업이 끝난 후, 야간근무를 시키지 말아라.
바빠서 어쩔 수 없이 일을 시켰으면 마땅한 임금을 지불해라.
먹거리에 신경을 써줘라.
우리는 선배들이 없는 뒤숭숭한 기숙사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었다. 그런 우리를 안심시키려는 듯, 2학년 선배들이 ‘밤배’를 부르기 시작했다. 그 노래는 옆방에서 옆방으로 이어져 기숙사 전체에 울려 퍼졌다. 사감과 같이 온 공장장이 문을 두들기며 노래를 중단시킬 때까지 그 노래를 부르고 또 불렀다.
선배들은 일주일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학교 측과 공장장은 이틀의 여유를 주며 그때까지 돌아오지 않으면 퇴학시키겠다고 통보했다. 퇴학 조치가 두려웠던 선배들은 하나둘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국경일에도 쉬지 못했고 월말이면 생산량을 채우기 위해 수업이 끝나고 늦은 시간까지 일했다. 집에 가고 싶어 일요일만 기다렸지만 가지 못하는 날들이 허다했다. 그렇게 일을 시키면서도 매끼 주는 거라곤 스팀에 쪄서 찰기 없이 풀풀 날리는 밥, 짠지와 단무지, 콩나물 몇 가닥 둥둥 떠 있는 멀건 국이 전부였다.
피곤함과 허기에 지칠 때마다 밤배 노래를 부르며 억울하고 서글픈 마음을 달랬다. 밤마다 기숙사 밖으로 노래가 울려 퍼지자 동네사람들이 시끄럽다고 항의했다. 결국 공장장은 그 노래를 부르지 못하게 금지시켰다. 밤배는 금지곡이 되었지만 선배들이 우리에게 가르쳤듯이 우리는 후배들에게 또 후배들에게 가르쳐 주었다. 삼 년간의 고달픈 생활을 잘 이겨낸 친구들은 학교를 졸업하고 더 거친 세상으로 씩씩하게 걸어 나갔다.
싫도록 별밤을 속삭이다가 지치면 꿈을 먹고, 그 꿈을 깨면 현실을 뛰며 달리며, 그래도 용기와 웃음을 잃지 않았기에 교실의 형광등은 더욱 빛나고 운동장의 어둠은 안개처럼 밀려 갔다. 참으로 몇년을 벼르다가 얻어진 값진 선물인가. 벅찬 이 기쁨을 언제까지나 아끼고 또 아끼며 사랑 할 것이다.내집이 없으면 어떻고 자가용이 없으면 어떠랴! 하늘이 다 나의 천정이고 온 땅이 다 내 발바닥 아래에 있는것을, 보석 대신 밤 이슬을 따고 화장품 대신 신념을 바르고 비단 옷 대신 올바름을 입고 사는 것도 괜찮지 않겠는가? 생각은 사람의 인간됨과 통하고 웃음은 여유로운 마음에서 기인 된다.
이 글은 고등학교 졸업식때 담임 선생님께서 사회에 나가서 움츠러 들지 말고 기죽지 말고 당당하게 살아 가라는 뜻으로 써 주신 응원 글인데 오랜동안 잊고 살았다.
밤배 노래를 들으며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힘들었어도 그 시절을 포기하지 않고 버텨냈으니 지금 우리가 있는 거야, 살면서 어려운 일이 닥쳐도 그 시절을 생각하면 버틸 수 있었어.’
내 손으로 돈 벌어 공부할 수 있다는 희망을 안고 집을 떠났던 친구들이 어느덧 육십이라는 나이를 코앞에 두고 다시 모여 밤배를 부른다. 단발머리 소녀였던 사십 년 전 고달팠던 우리의 삶을 추억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