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엌에서 들려오는 부산한 소리에 잠을 깼다. 이불속엔 아직 동생들이 자고 있어 슬그머니 빠져나왔다. 눈을 비비며 학교 갈 준비를 했다. 시간표를 보니 미술수업이 있는 날이었다. 준비물은 도화지와 크레용이었다. 도화지는 학교 앞 점방에서 사면되는데 크레용이 문제였다. 오랫동안 써서 없는 색이 더 많은 크레용은 그나마도 오빠와 시간이 겹치면 양보해야 했다. 다행히 오빠는 미술 수업이 없다고 했다.
책보를 허리에 묶으며 봉당으로 내려섰다. 고무신을 질질 끌며 설거지하는 엄마에게 갔다. 엄마 앞에는 이미 오빠가 서 있었다. 결국 도화지 살 돈을 받지 못했다.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해 도화지를 꼭 준비해 가고 싶었다. 할머니는 달걀을 항상 쌀 항아리에 넣어두었다. 항아리가 놓인 마루 구석으로 다가갔다. 주위를 살피며 빠른 손놀림으로 달걀 두 알을 꺼내서 허리춤에 쑤셔 박았다. 냅다 학교를 향해 뛰었다. 집에서 학교까지는 한 시간 이상 걸렸다. 가는 내내 달걀이 깨질까 봐 허리춤에 넣은 손바닥엔 땀이 흥건했다. 학교 앞 점방에서 도화지 두 장을 달걀과 바꾸었다. 기다리던 미술시간은 야외수업이었다. 우리는 변소와 운동장으로 이어지는 계단에 옹기종기 앉았다. 선생님은 학교건물 외진 곳에 있는 변소를 그려보라고 했다. 너와지붕과 나무 벽으로 만들어진 변소는 그늘지고 구석진 곳에서 빛을 잃고 서 있었다. 칙칙하고 암울한 느낌을 주는 변소가 늘 싫었다. 그림으로나마 예쁘게 옷을 입혀주고 싶었다. 변소지붕과 벽을 무지개 색으로 정성스럽게 칠했다. 도화지 속에서 변소가 무지개 옷으로 갈아입고 화사하게 살아났다. 예쁘게 변한 변소를 보면서 뿌듯했다. 수업이 끝날 때쯤, 선생님이 각자가 그린 그림을 소개하라고 했다. 친구들은 자기가 그린 그림을 두 손으로 잡고 가슴 앞으로 내밀며 보여주었다. 그림을 하나씩 살펴보던 선생님이 내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선생님이 손가락으로 그림과 변소를 번갈아 가리키며 물었다. “왜 이렇게 그렸어? 이게 어떻게 저 변소야?” “어둡고 칙칙한 변소가 싫어서 예쁘게 칠했는데요.” 순간 친구들이 일제히 내 그림으로 고개를 돌렸다. 이어서 친구들이 야유하는 웃음소리가 운동장 전체에 퍼졌다. 그게 무슨 변소냐며 손가락질하는 친구도 있었다. 당황하고 창피해서 그만 울음을 터트렸다. 그 이후로 그림을 그리면 아이들의 비웃는 소리가 들리는 듯해서 그릴 수가 없었다. 그렇게 그림 실력은 초등학교 4학년에 멈췄다.
오십여 년이 지난 지금, 지자체에서 운영하는 평생학습교육으로 그림을 배울 기회가 생겼다. 망설이다가 용기를 내서 수강신청을 했다. 그림을 그리라면 어떻게 그려야 할지 몰라 손이 정지되던 나였다. 그랬던 내가 다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못 그린다고 누가 뭐랄 것도 아니니 서툴고 어색한 그림이지만 움츠러들지 말자고 다짐한다. 오늘 무지개 변소를 다시 그려보려고 한다. 커다란 도화지와 빨주노초파남보 여러 색깔 물감도 옆에 있다. 어린 시절 침잠했던 추억들이 무지갯빛으로 피어나길 바라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