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수를 좋아한다. 특히 무더운 여름 땀 흘리며 밭에 풀 작업 하다 지치면 밥보다 국수가 먼저 생각난다. 그러면 국수를 삶아 비비거나 털랭이 국수를 만들어 먹는다. 삶아서 찬물에 헹구지 않고 그대로 간장양념을 얹어 먹는 털랭이 국수는 슬픔이고 아픔이고 추억이라 일부러 만들어 먹기도 한다.
초등학교 2학년, 봄에서 여름으로 건너가는 시기였다. 벽지학교로 지정된 우리 초등학교는 4교시가 끝나면 전교생에게 건빵을 나누어 주었다. 그날도 학교에서 나누어 준 건빵으로 점심을 때웠다. 집에는 건빵을 기다리는 동생들이 있어 그것마저 맘 놓고 먹을 수도 없었다. 집에 오니 햇살이 가득한 집은 조용했다. 책보를 풀어 마루 한 귀퉁이에 던져 놓고 집을 뛰쳐나왔다. 마을 공터에서 친구들과 고무줄놀이에 술래잡기하다 보면 뜨거운 태양은 어느새 서산 능선에 걸려있곤 했다. 동네 엄마들이 “아무개야! 그만 놀고 들어와 밥 먹어라!” 이름을 부르면 하나, 둘 아이들은 공터를 떠났다. 굴뚝에서 새어 나오는 연기 냄새를 맡으며 집으로 오는데 점심을 건빵으로 때운 뱃속이 꼬르륵거리며 울었다.
고향 집은 대문을 들어서면 안마당이 있고 건너에 부엌이 있다. 그 부엌에서 엄마가 저녁을 준비하고 있었다. 할머니가 마루에 밥상을 펼쳤다. 그때만 해도 막내가 태어나기 전이라 아홉 식구가 둥근 밥상에 둘러앉았다.
그런데 상 위엔 짠지(겉절이) 한 접시와 간장이 담긴 종지뿐이었다. 엄마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커다란 양푼을 들고 와 마루에 내려놓았다. 양푼에는 안개에 싸인 허연 국수가 가득 들어 있었다. 엄마는 국수 담은 대접을 식구들 앞에 놓으며 내게는 국수 위에 간장 한 수저 얹어 주었다. 일주일째 같은 국수만 먹었다. 아침은 보리밥으로 점심은 건빵으로 때웠으니 먹기 싫어도 먹을 수밖에 없었다. 젓가락으로 건져 입에 넣어 씹지 않고 꿀꺽 삼키는데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고 ‘우웩’ 거리며 다시 입 밖으로 나왔다. 젓가락을 던지다시피 그릇에 내려놓으며 떼를 썼다.
‘국수 먹기 싫어! 밥 줘, 밥 먹을래.’라며 징징거렸다. 말없이 국수를 먹던 시선들이 일제히 나를 향했다.
옆에 있던 할머니는 ‘오늘만 먹어. 내일은 꼭 밥 해 줄게’ 국수를 건져 내 입에 넣어주며 달랬다. 먹기 싫다고 떼쓰는 나를 향해 엄마가 눈을 부라리며 소리쳤다.
“네가 아직 배가 안 고프지? 먹기 싫으면 먹지 마!”
이 상황을 말없이 지켜보던 아버지 눈이 나를 향했다. 아버지 얼굴은 너무 말라서 살점이라곤 없었다. 더군다나 큰 눈은 쌍꺼풀이 져서 더 커 보였다. 그 큰 눈이 이마를 향해 치켜 올라갔다. 젓가락을 상위에 거칠게 내려놓았다.
‘어느무 계집애가 밥상머리 앞에서!’ 그 소리는 내 가슴을 두들겨 댔다. 두들겨 맞은 가슴은 딸꾹거렸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아버지는 성큼성큼 대문 밖으로 나갔다.
그날 나는 울다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잠이 들었다. 밖에서 들리는 고함소리에 잠이 깼다. 아버지가 술에 취해 지르는 소리였다.
“이 부자가 될 녀석들아! 이리 나와봐! 자지 말고 나오란 말이야!”
잠에서 깬 언니, 오빠, 나 셋이 마루에 나가 아버지 앞에 나란히 무릎을 꿇고 앉았다. 숨을 푹푹 내 쉴 때마다 지독한 술 냄새가 우리 몸을 휘감았다. “이 부자가 될 녀석들아! 미안...” 아버지는 말을 제대로 끝내지도 못하고 그대로 고꾸라지듯 쓰러졌다. 아버지의 감은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잠시 후, 코 고는 소리가 마루를 컹컹 뛰어다녔다.
여름이 되면 더위도 아랑곳없이 지겹게 먹던 뜨거운 털랭이 국수가 그리워지곤 한다. 그때처럼 국수를 삶아 간장 양념장 만들어 얹어 먹기도 하고 멸치 육수 내어 김장 김치 ‘쫑쫑’ 썰어 넣고 만들어 땀을 흘려 가며 먹곤 한다. 맛으로 먹기보다는 그리움과 추억으로 먹는다. 그러면 ‘부자가 될 녀석들아!’ 아버지의 고함소리가 바람결에 실려 오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