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 사는 여자

십미터가 넘는 높이에서 떨어져 온몸이 부서지는 사고를 당했다.

by 작은거인

흐려지는 의식을 부여잡고 응급실 침대에 누워있었다.

“누나! 어떻게 된 거야? 누나! 괜찮아?”

몽롱한 의식 속에 들려오는 목소리는 동생이었다.

동생의 얼굴을 보려고 눈을 뜨려는데 퉁퉁 부은 눈이 떠지지 않아 안간힘을 쓰며 억지 눈을 떴다. 올려다 본 동생의 눈엔 눈물이 가득 차 금방이라도 내 얼굴로 뚝 떨어질 것 같았다. 울고 있는 동생에게 괜찮다고 말을 하고 싶지만 바싹 말라붙어 벌어지지 않는 입술은 쉽게 열리지 않았다. 겨우 입을 떼는데 입술이 찢어지는 듯 아팠다.

“명현아, 나 소원이 있는데,”

“뭔데? 말해봐! 누나 소원이 뭔데?”

“지금 너무 목이 마른대 션한 소맥 한 잔만 마시면 소원이 없겠다.”

울먹이는 동생을 진정시키려고 너스레를 떨었다. 동생은 껄껄껄 웃으며

“허이구, 우리 누나 술 찾는 거 보니 살았네, 살았어!” 하며 울다가 웃다가 했다. 그러면 어디 어디에 털난다고 했는데,




12년 전 봄이었다. 봄은 내 이성을 마비시키는 계절이었다. 몸도 마음도 지치는 일상에 ‘숨’ 쉴 곳을 찾다 생긴 사고였다. 일주일에 한 번 쉬는 날, 집에서 쉬면 좋으련만 새벽부터 일어나 배낭을 꾸렸다. 수원에서 첫차를 타고 현리에 있는 운악산으로 갔다. 그때의 나는 고된 일상을 버텨 내느라 몸은 지쳤고 특히 상처받은 마음을 둘 곳 없어 허허로운 상태였다. 그러니 쉬는 날이면 무조건 산에 다녀와야 일주일을 버틸 수 있을 만큼 산은 내가 사는 이유였다.





자주 오르던 운악산에서 일어난 사고였다. 산길에는 진달래가 피기 시작했지만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날따라 산행은 유난히 힘들었다. 평소보다 많은 시간이 걸려서 정상에 도착했다. 내려오다가 너른 바위에 앉아 잠시 쉬고 일어나는 순간, 현기증이 나며 그대로 쓰러졌다. 바위 위를 구르는 내 몸은 가속도가 붙어 빠르게 굴러갔다. 팔꿈치에 힘을 주고 버텼지만 소용없었다. 정신없이 구르는데 돌아가신 아버지가 나타났다. ‘아버지! 살려 주세요.’ 마음으로 비는 데 ‘정신 차려라’ 하고 외치는 목소리에 눈을 떴다. 덕분에 간신히 바위틈을 잡을 수 있었다.

함께 간 동료들이 ‘밧줄을 내려 줄 테니 버티고 있어!’라고 소리쳤다. 하지만 팔에 힘이 빠지면서 손을 놓치고 말았다. 끝없이 구르는데 남편과 아이들의 얼굴이 스쳤다. ‘저 남자들 때문에라도 살아서 가야 한다. 을순아, 정신 차려!’라며 자신에게 주문을 걸었다.

산은 어두워지는데 구조대가 오는 시간은 느리게 갔다. 더는 버틸 수 없어 정신을 놓으려 할 때쯤 구급대원들이 도착했다. 들것에 실리고, 대원들의 몸과 나무들이 바쁘게 스치는 소리, 거친 숨소리와 함께 구급차에 실렸다.



정신이 차리라고 흔들어 깨우는 소리가 들리고 누군가에 의해 산소 호흡기가 끼워졌다. 신장은 파열되고, 피를 많이 흘려 스트레스 때문에 간 기능이 멈췄고, 코뼈가 부러지고. 부러진 갈비뼈가 폐를 눌러 물이 찼다고 했다. 그 소리를 들으며 희미해져 가는 정신을 간신히 잡고 있었다. 더군다나 심각한 건 등뼈와 목 부분의 뼈가 부러져 전신마비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그 소리에 절망했다. 그렇다면 살아야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었다.

본능적으로 엄지발가락을 움직였다. 움직인다. 절망은 다시 희망이 되었다.

MRI 촬영 후, 다행히 전신마비는 피할 수 있다고 했다. 주렁주렁 수액 줄을 달고 중환자실로 옮겨져 폐에 물이 마를 때까지 일주일을 보냈다. 일반실로 옮겨지고 천정만 바라보며 지내는 한 달 동안 세 번의 큰 수술을 받았다. 일어나 걸을 수 있을 때까지 남편은 나의 손발이 되어 주며 병실을 떠나지 않았다.

부러진 등뼈를 이어주는 수술을 받고 갓 걸음마를 시작한 아이처럼 비틀비틀 걸으며 퇴원했다.




주변 사람들은 내게 말했다. 이제는 산에도 못 가고 정상적인 생활도 못 할 거라고. 장애를 가지고 살게 될 것이라고,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다시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지리산의 매력에 빠져 산청으로 귀촌했다. 남편과 함께 자연 속에 묻혀 살고 있다. 땅을 일구어 채소를 심고 마당을 가꾸며 화단에 꽃을 심었다.




다시 태어난 나는 여전히 산을 좋아하고 숲을 사랑한다. 걸을 때마다 바람에 실려 오는 숲 냄새가 좋다. 마당에 나와 밤하늘에 별을 바라보면 행복하다. 자다가 눈을 떴을 때 살그머니 들어온 달빛에 가슴이 설렌다. 지리산을 오를 수 있는 지금 살아 있음에 감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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