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해 전, 복숭아를 먹는데 문득 그 속담이 떠 올랐다. 과연 복숭아씨를 심으면 복숭아가 달리는지 확인해 보고 싶어 화단 귀퉁이에 심었다.
이듬해 봄, 씨를 심은 곳에서 초록 싹이 안녕? 하며 뾰족 솟았다. 여름을 보낸 초록싹은 가을로 가면서 어린묘목으로 자랐다. 남편은 양지바른 곳에 옮겨 심었다.
3년 후, 첫 꽃이 피었다. 나는 꽃이 피었으니 당연히 열매도 맺을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개복숭아인지 복숭아인지 확인해 보기도 전에 다 떨어졌다. 다음 해에는 더 많은 꽃이 피고 열매도 맺었다. 알이 굵어지면서 생김새를 보니 복숭아가 확실했다. 확인만 했을 뿐, 익기도 전에 벌레들에게 다 빼앗겼다.
해가 갈수록 나무는 기세 좋게 자라면서 열매를 주렁주렁 달았다. 우리 부부는 이번에는 벌레들에게 빼앗기지 말자며 정성을 들였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부부가 들인 정성이 무색하게 하나. 둘씩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두 개의 열매만 남아 있었다.
익을 때까지 떨어지지 않고 버텨 준 두 개의 복숭아를 사이좋게 나누어 먹었다. 그 맛은 지금까지 먹어 본 복숭아 중 최고의 맛이었다.
그 맛에 반한 남편은 복숭아나무에 더 많은 정성을 들였다. 달고 맛있는 과일을 맺는 나무라 그런 걸까? 복숭아나무는 다른 나무들에 비해 유난히 진딧물이 많이 꼬인다.
거름을 듬뿍 주고 잎이 돋기 시작하면서 진딧물 약을 치기 시작해서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릴 때까지 세 번의 약을 더 쳤다. 그리고 노란색 봉지를 씌웠다.
나뭇가지에 납작하게 붙어 있던 봉지가 여름이 되더니 출산을 앞둔 임산부의 배처럼 빵빵해졌다.
남편이 슬금슬금 복숭아나무 밑으로 가더니 비에 젖고 햇빛에 바래 빛을 잃은 누런 봉지를 땄다. 봉지를 씌울 때는 어디로 튈지 모르는 천둥벌거숭이 같은 열매였다. 봉지에서 나온 복숭아는 곱게곱게 화장을 한 새색시의 오동통한 얼굴을 닮았다.
과일나무들은 뿌리가 잘 내리고 생명력이 튼실한 같은 과의 어린 나무에 접목해서 심는다. 씨로 심은 나무에서는 과일의 원조격인 조상의 열매가 달린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복숭아씨를 심으면 개복숭아가 달리고 감씨를 심으면 감의 조상인 고염이 달리는 이치라는 것을 귀촌 후에 알게 되었다.
예전에는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고 했는데 지금은 콩을 심어도 팥이 나올 수 있다고들 한다.
세상이 변한 요즘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지 모르겠지만 내가 심은 복숭아씨가 싹이 되고 나무가 되어 꽃을 활짝 피우더니 복숭아가 달렸다는 것만은 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