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꾸 눈물이 나

by 작은거인



아버지는 3남 3녀의 막내로 태어났다.
가난한 시절에 태어난 형들과 누나는 병들어 죽고 6,25 전쟁 때 죽었다. 유일하게 아버지와 동생인 막내 고모만 살아남았다.
4남매를 잃은 할머니는 남매마저 잃을까 봐 지극정성으로 키웠다고 했다.
형제들이 없어 외롭게 자란 아버지는 2남 5녀를 낳았다. 내 위의 오빠는 공부를 잘해서 아버지의 희망이고 꿈이었다.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오빠가 중학교 3학년이었다. 고등학교 원서를 내는 문제를 가지고 인문고를 가서 직업 군인이 되라는 아버지와 공고를 가겠다는 오빠가 심하게 싸웠다.
결국 오빠는 아버지의 고집을 꺽지 못하고 인문고를 선택했다.
아버지는 암이라는 병을 얻었음에도 인천에 월세방을 얻어 오빠를 인천고등학교에 다니게 했다. 할머니는 오빠가 졸업할 때까지 밥을 해 주며 뒷바라지를 했다.
하지만 아버지는 오빠가 졸업하기 전에 암을 이기지 못하고 쓰러져 52세라는 나이에 돌아가셨다.
결국 오빠는 대학에 가지 못했지만 동생들이 천둥벌거숭이로 자랄 때 그렇게 귀하게 자랐다.

어제는 아버지 기일이었다. 그런데 제사를 모시지 않는다고 했다. 조카의 다리 인대가 끊어져 수술을 해서 절을 못한다는 이유다.
집안에 우환이 있으면 귀신이 해코지를 한다고 해서 제사를 모시지 않는 풍습이 있다. 하지만 조카가 죽을병에 걸린 것도 아닌데 제사를 모시기 싫은 억지 핑계를 대는 것 같아 오빠에게 서운했다.


나도 6남매의 장남과 결혼해서 맏며느리다. 진수성찬은 아니지만 정성으로 음식을 만들어 시부모님의 제사를 모신다.
종교를 떠나서 제사를 모시는 것은 우리나라의 전통문화이고 풍습이다.
조상을 잘 모시면 자식들에게 덕이 간다는 말이 있다.

내가 시부모님의 제사를 정성으로 모시는 이유는 내 아이들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바라는 어미의 심정이다.

어려서는 아들만 바라보는 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지금은 그렇게 살 수밖에 없었던 그 삶을 이해한다.
처절하게 살아낸 아버지의 삶을 떠 올리니 자꾸 눈물이 난다.
한 달 후엔 엄마 기일이다. 그때는 고향에 모신 부모님 산소에 가서 술 한잔 부어 드려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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