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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Aug 14. 2024

가끔 그럴 때가 있다



   가끔 그럴 때가 있다. 샘에서 흐르는 물처럼 머릿속이 말개져서 전 날  한 일을 흘려버리거나, 어두운 동굴처럼 캄캄해지면서 무얼 먹었는지 까맣게 잊어버린다.

 그런 증상은 나이가 들어가면서 점점 심해지고 있다.

  아침에 일어나 남편은 출근을 하고 나는 아직 동이 트지 않은 어두운 마당을 걸었다.
 들어가서 아침일기를 써야 하는데  어제의 일이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특별한 일이 없었다는 의미기도 하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게 바로 날의 일이 전혀 기억나지 않는 걸까?
 어제의 일을 떠 올리려고 느리게 느리게 마당을 걸으며 생각을 차분히 가라앉혔다.
 


 아침운동하러 나갔다가 닭장에서 탈출한 병아리가 무씨를 파종한 밭을 파헤치는 모습을 봤다.
 사료로 병아리를 유인해 닭장에 넣고 무씨를 다시 뿌리느라 운동할 시간을 놓쳤다.
그 이후,  뭘 했지? 생각하며 계속 마당을 서성거리는데 평상에 널어놓은 고추가 눈에 들어왔다. 그제야 오후에 고추를 땄다는 생각이 났다.
 고추를 따는 동안 태양은 굶주린 사자처럼 이글거리며  인정사정 봐주지 않고 덤벼 들었다.  태양을 피할 생각조차 못하고 고추를 씻고 건지고 채반에 펼쳐 너느라 더위에 지친  몸은 오열했다.  

 나는 어제의 힘들었던 시간을 떠 올리며   허파에서 바람 빠지는 소리만 연거푸 쏟아냈다.


  요즘 그런 증상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전날 무슨 일을 했는지. 수납장에 고이 모셔둔 물건을 몇 날, 며칠씩 찾아 헤매기도 한다. 손에 들고 있는 핸드폰이 어디에 있는지 찾는다. 어느 날은 세탁기 안에서 목욕재계 하고 얌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던 적도 있었다. 



  내 나이 육십, 자신도 모르게 세월을  야금야금 먹고 있었다. 세월을 먹은 그만큼의 내 기억력은 반비례로 빈약해지고 있다.
   어젯밤부터인가? 아니면 그제부터인가? 풀벌레 울음소리가 요란하다.

아! 사부작사부작 가을이 오고 있다.

내 시간도 지금의 가을처럼 시나브로 흘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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