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도서관에서 ‘대전 마음치유센터 숲’ 박봉희 센터장의 마음 돌봄 강연를 들었다. 마음을 돌보려면 타인과의 관계, 자신과의 관계, 그리고 소통이 중요하다고 했다. 무엇보다 소통하고자 하는 대상의 감정을 정확하게 들여다볼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강연중에 강사는 자신의 엄마와 화해하게 된 계기에 대해 말했다. 사춘기 이후 엄마와 정서 갈등을 겪으며 사이가 벌어지기 시작하다가 결혼 후 냉정하게 이별했다고 했다. 그렇게 서먹하게 지내다가 환갑이 지나 엄마 입장을 이해하게 되면서 화해했다고 했다. 지금은 상대를 이해하면서 모녀라기보다 자매처럼 잘 지낸다고 했다.
그 이야기를 듣는데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무언가가 울컥 치밀어 오르며 명치끝을 때렸다. 혼란스러웠다. 잠시 심호흡하며 마음을 진정시키고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았다. 그것은 억울함이었다. 엄마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억울함이 함께 온다. 그런 감정으로 인해 어쩌다 엄마를 떠올리는 글을 쓸 때 엄마가 아닌 그녀로 쓰고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여름이었다. 3교시 수업이 끝나고 화장실에 다녀오다 계단에서 헛다리를 짚어 다이빙하듯 넘어졌다. 그 사고로 입술은 터져 너덜거렸고 앞니 하나가 부러졌다. 부러진 앞니는 아무리 찾아도 없었다. 찾기를 포기하고 쿡쿡 쑤셔대는 고통을 참아가며 집에 왔다. 하지만 퉁퉁 부은 입술 때문에 아무것도 넘길 수 없는 나를 누구도 병원에 데리고 가는 사람은 없었다.
그 사고 이후 난 맘 놓고 소리내어 환하게 웃어 본적이 없었다. 앞니가 없는 내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손으로 입을 가리거나 입술을 앙 다물고 어색한 웃음으로 대신 하곤 했다. 내손으로 돈 벌어 이빨을 덮어 씌울때까지 웃는 법을 잊고 살았다.
그 해, 겨울방학에 할머니는 소나무로 팽이를 깎았다. 윗부분에 색연필로 무지개색을 칠해서 오빠에게 주었다. 오빠는 팽이를 들고나가 본인이 직접 깎았다고 친구에게 자랑했다. 친구는 자신도 깎아 달라고 했다. 나무를 잘라야 하는데 톱을 사용할 줄 몰라 작두로 자르겠다고 덤볐다. 오빠는 나무가 움직이지 못하게 잡고 작두날 아래 놓았다. 친구는 작두를 들어 올려 발로 내리찍었다. 손가락중 검지와 중지에 손톱의 절반이 살과 함께 잘려 나갔다. 그 사고로 온 집안이 발칵 뒤집어졌다. 교통수단이 없던 그때 아버지는 할머니, 엄마, 오빠를 경운기에 태우고 보건소를 향해 달렸다.
어린 나는 그 상황을 지켜 보며 무슨생각을 했을까?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입술이 욱신거린다
강사에게 소리 없는 항변을 했다. ‘당신은 갈등 대상이 살아있기에 화해가 가능했겠지만, 내 갈등 상대는 이미 옆에 없는데 어찌 화해를 할 수 있습니까?’ 혼자 묻고 혼자 답했다. ‘이 문제는 오롯이 나만이 풀어야 할 문제겠군요.’
박봉희 소장은 강연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말했다.매일 아침 일어나서 제일 먼저 내 감정을 들여다봐라. 그 감정을 단어로 쓰고 마주하라. 그리고 단어와 대화해라. 그러면 자신의 마음과 자연스럽게 소통할 것이다. 그것만으로도 자신의 마음을 돌볼 수 있다.
오늘 아침, 나의 감정을 들여다보며 감정 단어를 꺼내 본다. ‘억울함’, ‘슬픔’이다. 마주하기 두렵다. 하지만 두렵다고 피하지는 않을 것이다. 곪은 상처는 터트려야 아문다고 했으니까. 내 마음 치유를 위해 ‘억울함’, ‘슬픔’을 다독이고, ‘긍정’과 ‘행복’의 감정 단어를 다시 꺼내어 하루를 시작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