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가방은 빨간색이었다. 국민학교에 입학할 때가 되니 엄마는 반짝반짝 빛이 나는 가방을 사주었다. 그 가방이 좋아서 종일 어깨에 메고 다니며 입학 날짜만 기다리고 있었다.
입학하고 일주일쯤 지나자 학교에서 교과서를 나누어 주었다. 교과서는 새 책이 절반이었고 헌책이 절반이었다. 교과서를 넣은 가방을 메고 집으로 오는 내내 기분은 들떠 있었다.
저녁을 먹고 난 후, 책 받아왔다고 오빠에게 자랑했더니 책을 가져오라고 했다. 가방에서 책을 꺼내더니 해가 지난 달력을 뜯어서 하얀색이 보이도록 책 표지를 싸 주었다. 그리고 교과서의 이름과 나의 이름을 쓰면서 알려주었다.
“이렇게 싸야 깨끗하게 쓸 수 있어. 책이 낡으면 반납할 때 선생님께 혼나.”
시골 벽지학교엔 학생들에게 나누어 줄 교과서가 늘 모자랐기 때문에 한 학기가 끝나면 교과서를 학교에 반납했다. 그리고 깨끗한 교과서들은 선별해 후배들에게 물려주었다. 깨끗하게 포장한 책과 빨간색 가방은 나와 함께 일 학년을 보냈다.
그날은 이학년 교과서를 받아오는 날이었다. 여러 권의 교과서를 넣은 가방은 무거웠다. 친구들과 달리기를 해서 지는 사람이 가방 들어주기 게임을 하며 집으로 돌아오고 있었다. 사건은 달리기 하던 중에 일어났다.
달리기에 이겨서 무거운 가방을 친구에게 들게 하고 싶은 욕심에 힘껏 달리던 중, 책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가방끈이 끊어졌다. 순간, 무서운 엄마 얼굴이 떠 오르며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집에 가면 분명 엄마한테 혼이 날 텐데, 어쩌지?’
끈이 끊어진 가방을 가슴에 안고 집으로 오는 길은 불안하기만 했다. 떨리는 마음으로 슬그머니 대문을 들어서며 엄마를 찾았다. 엄마는 허리를 구부리고 수수 빗자루로 봉당을 쓸고 있었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엄마를 불렀다.
“엄마!”
빗자루질하던 손을 멈추고 허리를 숙인 채 고개를 돌려 나를 쳐다보았다. 엄마의 얼굴을 보는 순간 생각지도 못한 거짓말이 터져 나왔다.
“엄마! 상철이가 가방끈을 끊어뜨렸어.”
“뭐라고? 상철이가 왜?”
“상철이가 뒤에서 가방을 잡아당겨서 끈이 끊어졌어.”
나보다 한 살 많은 상철이는 늘 나를 쥐어박고 고무줄을 끊고 괴롭히던 아랫집 사는 남자아이였다. 하필이면 그 순간에 상철이 이름이 튀어나왔을까? 엄마는 봉당을 쓸던 빗자루를 그 자리에 던져 놓고 가방을 받아 들었다. 이리저리 살피더니 내 손을 잡아끌며 대문을 나섰다.
아랫집에 도착하니 상철이 혼자 집에 있었다. 엄마는 상철이를 불러 왜 그랬냐고 다그쳤다. 그러나 상철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으며 자기가 그런 것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엄마 뒤에 숨어서 얼굴만 빼꼼 내밀고 소리쳤다.
“네가 내 가방 잡아당겨서 끊어졌잖아!”
상철이는 계속 아니라고 했지만 엄마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 나는 뻔뻔스럽게 상철이에게 잘못을 뒤집어씌우고 엄마에게 혼나는 것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억울한 상철이는 나를 볼 때마다 가만두지 않았다. 주먹질하고 발을 걸어 넘어트리기 일쑤였다. 그러나 한번 내뱉은 나의 거짓말을 인정하지 않으니 횡포는 계속되었다.
그날도 학교에서 돌아오는 길에 또 내 머리를 쥐어박았다. 그때쯤 장미화 가수의 ‘어떻게 말할까’의 노래가 유행할 때였다. 아버지의 성함이 ‘백 용 기’였는데 ‘아니야! 용기를 내야지.’란 부분을 계속 부르며 놀려대는 통에 더는 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주먹질하는 상철이를 향해 주먹을 움켜쥐고 부들부들 떨며 눈을 흘겼다.
하지만 또래들보다도 체구가 작았던 나는 남자아이를 힘으로 이길 수 없었다. 빡빡머리 상철이는 누런 코를 들이마시며 ‘어디 덤벼봐’하면서 혀를 날름거렸다. 그 순간 동네 아이들한테 맞고 울기만 하던 나는 어디서 그런 용기가 났을까? 순식간에 달려들어 나보다 머리통 하나가 더 큰 상철이 목을 끌어안고 손깍지를 꼈다. 그리고 귀를 물었다. 상철이는 벗어나려고 몸부림쳤지만 깍지 낀 내 손은 풀리지 않았다.
그동안 당한 것까지 합쳐서 더 세게 물었다. 아프다며 고통을 참지 못하고 소리를 질렀다. 다시는 때리지 않겠다는 다짐을 몇 번이나 받고 나서 손깍지를 풀었다. 분이 풀리지 않아 씩씩거리며 악을 썼다. "한 번만 더 놀려봐! 가만 안 둘 거야! 그리고 울 아부지 이름 부르고 놀리면 오빠한테 이를 거야!" 하며 노려보는데 귀에서는 피가 흘렀다. 나는 끝내 상철이에게 사과하지 않았다.
그날 이후, 상철이를 비롯한 동네 친구들 그 누구도 나를 괴롭히는 친구들은 없었다.
고향을 떠난 지 40년이 되어간다. 명절이 되면 고향에 가곤 한다. 부모님 산소에 들려서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곤 하는데 가끔 누런 코를 훌쩍거리며 빨아먹던 상철이가 생각난다.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빡빡머리에 땜빵 자리가 보였던 머리는 희끗희끗한 머리카락으로 덮혔을까? 아니면 훌러덩 벗겨진 대머리 아저씨가 되었을까? 두리뭉실 뱃살을 두른 멋진 중년 신사가 되었을까? 어디서든 잘살고 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