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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Aug 01. 2023

남편의 혈압과 여섯 개 의 돌멩이

  드디어 남편이 운동을 시작했다.



 남편의 직업은 명목상 목수지만 하는 일은 잡부였다. 두 달 전, 퇴근한 남편이 저녁을 먹으며 한숨을 내쉬었다. 먹는 걸 좋아하는 남편이 밥상 앞에서 한숨을 쉬는 일은 드문 일이라 나는 적잖이 놀랐다. 무슨 일인데 한숨을 그리 쉬냐고 물었다. 잠시 주저주저하더니  일하러 간 현장에서 혈압이 높다고 집에 가라고 하더란다. 요즘은 현장에서 쓰러지면 여러 가지로 복잡해지니 일을 시작하기 전에 혈압측정부터 한다고 했다. 다른 사람의 만류로 일을 끝내고 병원에 가서 다시 측정했는데 높게 나왔다고 했다.

 체질상 먹성에 비해 살이 찌지 않던 남편은 육십을 넘기면서부터 배가 조금씩 나오기 시작했다. 같은 연령대에 이 정도 배 안 나온 사람이 어디 있냐며 운동을 권하는 내 말을 무시했다. 아침, 저녁으로 걷는 나는 저녁을 먹고 같이 걷자고 하면 일하고 들어와서 피곤해서 싫다고 했다. 주말에 산에 가자고 하면 일주일에 한 번 쉬는데 산에 가자고 한다며 투덜거렸다. 일하면서 걷는 거로 운동은 충분하다며 큰소리치던 남편은 결국 병원에 가서 혈압약을 처방받았다. 그렇게 높아지는 혈압을 약으로 해결하려 했지만 문제는 또 생겼다. 혈압약을 먹은 후 부작용으로 어지럽고 메슥거린다고 했다. 둘러댈 핑곗거리가 없어진 남편은 나와 함께 운동을 시작했다. 저녁을 먹은 후 매일 집 앞 비탈길을 오르락내리락 걷기 시작했다. 보통 평지를 걸을 때 한 시간을 걸으면 6 천보가 조금 넘었다. 집 앞을 한번 왕복하면 천보 정도가 되었다. 남편은 다섯 번만 왕복하자고 했다. 나는 적어도 한 시간은 걸어야 운동 효과가 있으니 여섯 번을 왕복하자고 했다. 꼼짝없이 나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만든 것은 남편이었다.

 길 위에 여섯 개의 돌멩이가 있다. 이 돌멩이는 남편이 모아 놓은 것이다. 우리는 밤마다 비탈길 왕복 횟수를 가지고 티격태격했다. 다섯 번이다. 아니다 여섯 번이다. 그러면서 매번 내게 져주던 남편은 억울했는지 발을 옆으로 세워 땅 위에 바를正 자를 쓰기 시작했다. 그런 남편 모습이 귀여워 배를 잡고 웃었다. 며칠을 바를正 자를 써 가며 걷던 남편이 갑자기 갓난쟁이 주먹 크기의 돌을 모았다. 그리고 왕복할 때마다 하나씩 옮겨 여섯 개를 모아 놓았다. 하루는 세 개만 옮기고 그대로 두었다. 남편의 행동이 이상해서 왜? 돌을 옮기지 않느냐고 물었다. 남편은 내게 따지듯 맹랑하게 되물었다.
“당신이 옮기면 되지! 왜 꼭 내가 옮겨야 하는 건데?”
남편의 맹랑한 물음에 나의 당당한 대답은 어둠을 덮고 잠든 숲을 파고들었다.
“왜냐하면! 나는 코치이고 당신은 학생이니까!”
남편은 내 대답을 어이없어하며 반격했다.
“이 사람아! 학생들이 거짓말 더 잘하는 거 몰라? 걷기 힘들다고 한 개 옮길 때 슬쩍 두 개씩 옮긴다는 걸?”
 “아니, 아니. 아니야! 내 학생은 착하고 성실해서 거짓말 같은 건 할 줄 모른다구!”
  티격태격하며 걷기 시작한 지 한 달, 두 달이 지나면서 높았던 남편의 혈압은 조금씩 정상으로 내려갔다. 장마기간 동안 걷지 못하다 다시 걷기 시작했다. 나는 내게 다짐하듯 남편에게 말했다,
”우리가 부모로서 해야 할 일은 건강하게 늙어 가는 것뿐이야. 경제적으로 도와주지도 못하는데 건강만이라도 챙겨서 아이들 도와주고 힘이 돼줘야지. 그리고 우리 부부도 건강하게 오래오래 같이 살아야지. “



아직 남편의 혈압은 오르락내리락 불안정할 때도 있지만 운동을 꾸준히 하면 좋아지리라 믿으며 오늘도 땀이 흥건하도록 열심히 걷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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