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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Sep 13. 2023

도대체 남아나는 게 없다.


  열매는 새들이   고구마나 옥수수는 멧돼지들이 배추나 무. 콩등은 고라니들이 습격을 하는 통에 도대체 남아나는 게 없다.  그나마 텃밭은 울타리를 쳐서 동물들의 습격을 방지할 수 있다. 하지만 날아다니는 새나  굼벵이 개미들의 습격은 독하디 독한 살충제를 뿌리지 않는 한  방법이 없다. 이번엔 개미들의 습격이다.   


 7년 전 심은 사과나무에 삼 년 전에 네 개의 사과가 달려서 맛을 보았다. 지난해는 꽃도 피지 않더니 올해는 일곱 개의 사과가 달렸다.

 두 개는 장맛비에 녹아 떨어지고 다섯 개의 사과가 익어가고 있었다. 일주일 전  두 개의 사과에 구멍이 나서 새들의 횡포인가 보다 하고 따서 멀쩡한 부분만 깎아서 맛을 봤다.  약을 치지 않아 거무튀튀산 색의 허름한 옷을 입고 있지만 생긴 꼬락서니에 비해  아삭한 식감에 향과 맛은 아주 좋았다.

이제 세 개의 사과가 나무에 달려 있다.  가을의 햇살을 받아 좀 더 크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사과나무를 지나치며 눈맞춤하는 게 요즘의 일상이다. 그런데  외출했다 돌아오며 본 사과에 커다란 구멍이 뚫렸다. 나는 또 까치나 직박구리의 소행이라고 생각했다.  도대체  너희들 때문에 남아나는 게 없다며 구시렁거리며 사과를 따서 손에 담았다.

그런데 구멍 속에서  커다란 개미들이 급하게 나오더니 이내 내 손등을 휘젓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들의 행동에 놀란 나는 사과를 든 손에 힘을 주고 털어내기 시작했다.

나의 손짓에 깊게 파인 구멍에서 개미들이 줄 지어 나오더니 이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모습을 보는데 뜬금없이  의자왕과  삼천궁녀가 생각나는 건 뭐지? 나의 엉뚱한 상상력에 내 입은 피식피식 웃음을 쏟아낸다.  




 속을 얼마나 파 먹었을까? 조금이나마 먹을 건 남아있는  확인 해 보고자 데크 위에 우두커니 자리를 지키고 있는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집안으로 들어가서  작을 칼을 들고 나와 쪼개 보니 그 속에는 미로처럼 긴 터널이 만들어져 있다. 그렇게 털어냈건만  깊이 파인 구멍 속에는 아직도 개미가 숨어있었다. 

 맛있는 사과를 먹을 수 있다는 기대감으로 봄부터 지금까지 기다렸는데 그 기다림이 허사가 되는 순간이다.


 요놈을 꺼내서 죽여야 하나? 살려 줄까? 잠깐의 갈등을 하는 순간 생명의 위기를 느꼈는지 구멍 속에서 잽싸게 탈출한 개미는 어디론가 쏜살같이 내달리고 있다. 테이블 위에서 살겠다고 전력질주를 하는 그 모습이 안쓰러워 혼잣말을 한다.

"그래 살아라. 살아."

개미가 먹고 남은 사과는 요리조리 베어내고 멀쩡한 부분만 깎아 접시에 담았다.  한 조각을 젓가락에 꽂아 입으로 넣으려다 웃음이 터졌다.바람을 견디느라  너덜너덜해진 옷을 입고 있는 들판의 허수아비가 떠 올랐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상상하며 배를 잡고 웃느라 그만 눈에서 눈물이 흘렀다.

그래. 남아나는 게 없으면 어떠냐? 이만큼이라도 내 입속으로 들어오면 그것만으로도 감사하지 아니한가? 웃으면 복이 온다니 실컷 웃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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