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마다 김장용 무를 심으면서 씨앗을 넉넉하게 뿌린다. 일부는 김장할 때 사용하고 나머지는 썰어 말려서 차로 만든다.
어느 해인가 생각 없이 씨앗을 많이 파종했다. 병든 것 하나 없이 굵고 튼튼하게 자랐다. 김장을 하고 남은 무는 여기저기 나눔 하고 남은 것은 땅에 묻었지만 겨울을 다 보내지 못하고 바람이 들었다. 바람 든 무를 버리기 아까워 썰어서 말리고 볶아서 무차를 만들었다. 매일 저녁을 먹고 차를 우려 마셨다. 위가 예민해 자주 체하고 더부룩하곤 하던 속이 편해졌다.
등산을 좋아하는 탓에 무릎이 자주 아팠다. 3년 넘게 무차를 마시면서 차츰 그런 증상도 사라졌다. 오르락내리락하던 남편의 혈압도 안정을 찾았다.
천연소화제라는 무로 차를 만들어 마시며 그 효능을 경험하고 해마다 무를 넉넉하게 심었다. 차로 만들어 두고 1년 내내 마신다.
미리 많이 만드는 이유는 찬 바람을 맞으며 자란 가을무가 영양도 많고 맛도 좋은데 보관이 어렵다는 게 이유라면 이유다.
김장을 끝내고 무 50개를 썰어 채반에 널었다. 일주일이 지나는 동안 지리산의 햇살과 바람이 꾸덕꾸덕하게 잘 말려 놓았다. 팬에서 덖어야 하는데 덖기 전에 덜 건조된 것은 따로 분리했다. 덖는 과정에서 시간의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피자팬에서 1~ 2도 사이에 설정하고 덖고 식히기를 반복했다. 그러다가 그 과정이 시간도 많이 걸리고 귀찮아서 스스로 마르라고 팬의 온도를 F점에 맞춰 놓고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거실로 나오니 무가 건조되면서 풍기는 달큼한 냄새가 코끝으로 덤벼들었다.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잘 건조되었으려나? 걱정반 기대반으로 팬이 있는 곳으로 갔다.
아뿔싸! 무차의 색이 검게 변해 있었다. 온도를 높게 설정해 놓은 탓이었다. 분명히 거쳐야 하는 과정이 있는데 귀찮다는 이유로 잔꾀를 부린 대가였다. 쓴 맛이 나면 그동안의 과정이 허사로 돌아간다. 서둘러 물을 끓이고 컵에 서너 조각 넣고 우려서 맛을 보았다. 다행히 쓴맛은 나지 않고 구수하고 단맛이 입안 가득 번졌다. 첫 덖음은 실패와 성공 그 어디쯤이었다.
내가 마실 거니까 괜찮아! 다시 잘해보자! 귀찮음의 참사를 반성하고 심기일전 다시 무를 덖기 시작했다. 덖고 식히고 덖고 식히고 뚜껑을 덮어 수분이 남아있는지 확인했다.수분이 남아 있으면물안개 피어오르듯 뚜껑에 이슬처럼 모인다. 주방타월을 이용해 수분을 닦고 다시 뚜껑을 덮어 확인하고 또 닦고 또 닦으며 수분이 올라오지 않을 때까지 반복했다. 수분이 남아 있으면 장기보관이 안되고 변질이 되기 때문이다. 수분이 올라오지 않는 것을 확인하고 중불에서 갈색이 날 때까지 한번 더 볶았다.
미리 소독한 병에 담아 수분이 침입하지 못하게 밀봉했다.
주위에서는 건조기에 말려서 방앗간에 가서 볶아오면 편한 것을 왜 그리 힘들게 하느냐고 묻는다. 하지만 단순한 편리함과 여러 과정을 거치는 번거로움의 차이를 알기에 나는 오늘도 새벽부터 심기일전 무차를 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