썰고, 썰고

잘려 나간 조각들

by 작은거인



윗지방에는 폭설의 첫눈이 내렸다는데
아랫지방은 기온을 떨군 강풍이 몰아쳐 숲의 낙엽을 모두 떨구었다.
생강을 말리려고 썰고 있는데, 거센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이 짤랑짤랑 창문을 두드린다.

며칠 전 분양받은 작약 한 덩이를 떠올린다.

다른 일에 치여 잊고 있었는데, 혹여 추위에 얼지는 않았을까.

종이상자 안에서 작약덩어리를 꺼냈다.
겨울이 다 지나지도 않았는데 분홍빛 입술을 뾰족하게 내밀고 싹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었다.
굵고 단단한 뿌리, 마치 땅속에서 우러난 우엉처럼. 굵고 단단했다.
오래된 뿌리는 잘라내고, 꽃을 보기 위해 뇌두는 햇살 좋은 곳에 심었다.
잘라낸 뿌리는 말려 덖어 차로 마시려 얇게 썰어 널었다.


생강향과 작약향이 어우러진 집 안에는 또각또각 칼질 소리가 퍼진다.

칼끝에서 잘려 나간 조각들을 보며 흐트러진 내 생각을 하나씩 나열한다.

단순해지고 싶은데, 정리되지 않은 생각들이 머릿속을 헤집으며 마음에 흙탕물을 만든다.

햇볕에 내어 놓은 생강이나 작약뿌리처럼, 내 생각도 볕에 널어 말리면, 그럴 수 있다면 생각이 정리가 되면서 바삭하고 향긋한 햇살 냄새가 날까,

엉뚱한 상상에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창 밖에는 바람에 흔들리는 풍경소리와 굴러가는 낙엽 소리가 뒤섞여 들어온다.
그렇게 얼음처럼 차가운 하루가 서서히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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