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풍이 불던 날에
바람이 데려온 첫눈
지리산 골짜기마다
숨 가쁜 휘파람이 스쳐간다
산허리는 추운 듯
고요히 몸을 웅크린다
허공에 터진 하얀 씨앗들
빙글빙글 돌다 나뭇가지에 내려앉고
먼 능선들은 희뿌연 먼지 속으로
살며시 숨어든다
바람이 마당을 지나며
널어놓은 무를 간지럽힌다
하얗게 굳은 무는
할머니의 주름진 이마처럼 쪼그라든다
햇살이 호수에 잠겨
너울너울 춤사위를 펼치고
물금을 그리며 일렁인다
바람이 처마 밑 풍경을 흔드니
웃음소리 딸랑딸랑 번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