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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Aug 24. 2023

풀벌레 울음소리는 낭만이었고 모기는 현실이었다

 풀벌레 울음소리  들으러 나간 마당에서


후덥지근하고 습한 여름은 자리를 내어 주지 않으려는 듯 버티고 있지만 가을은 시나브로 여름을 밀어내며 시원한  바람을 데려 오는 밤이었다.
깊어가는 밤, 대성통곡을 하며 요란하게 울어대던 비는 그치자 어둠을 걷어내지 못한 새벽이 울기 시작했다.
신나게 노래하는 풀벌레들과 새벽이 어울려  합창을 했다. 나는 그 소리에 이끌려 마당으로 나갔다.

의자에 앉아 그들의 연주를 즐기려는데 방해꾼이 나타나 집중할 수가 없다. 처서가 되면 모기 입이 옆으로 돌아간다는데 예치골 모기들은 더 극성스러워졌다. 얼마나 굶주렸는지   맛을 본 그놈들은  인정사정 봐주지 않았다. 온 몸을 긁어대느라 풀벌레의 연주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결국 달려드는 모기떼의 공격을 견디지 못하고 집안으로 도망쳤다.

방충망을 삼팔선  장벽처럼  사이에 두고  밖에선 모기들이 안에선  거실 바닥에 오도카니 앉은  나의 시선이  마주하고 있다.

 모기들은  피맛을 잊지 못했는지 방충망에 달라붙어 나를 향해 으르렁 거리고 있다.


그래, 덤벼 봐라. 베를린 장벽은 무너졌지만 이 방충망 장벽은 삼팔선보다 더 강해서 절대 무너지지 않을 것이다. 


눈을 크게 뜨고 노려 봤지만, 결국 낭만은 마당에 내동댕이 치고 현실에 쫓겨 여기저기 가려움만 가득 안고 집안으로 피신한 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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