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작은거인 Aug 07. 2023

살아있는 촉은 나의 하루를 불안에 떨게 했다.

하루종일 불안한 마음을 떨쳐내지 못하고

 



아침부터 원인 모를 불안감에 시달렸다. 집안일하는 내내. 작업실에서 삼베 수세미 만드는 중에도 불안감 때문에 일에 집중할 수 없었다.

 마음을 가라앉히려고 모자를 뜨려고 뜨개질에 집중하고 있는데 어디선가 고약한 냄새가 스며들었다. 가끔 앞집이나 아랫집에서 쓰레기를 태우며 비닐도 태우던 생각이 나서 신경질적으로 예민해졌다. 고약한 냄새에 예민해진 나는 뜨개질하던 손을 멈추고 일어섰다.

 마당으로 나가 아랫집과 주변을 살피니 연기도 올라오지 않고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고 고요했다. 고개를 갸웃거리며 다시 집안으로 들어섰는데 주방 쪽에서 긴박한 여자의 음성이 반복해서 들렸다.     




 아뿔싸! 후다닥 주방을 향해 뛰었다. 그리고 다용도 문을 열었다. 문을 여는데 이미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연기가 가득했다. 연기 속에서 천장에 매달린 여자는 연신 화재발생이라고 외치고 있었다. 나는 가스 밸브부터 잠그고 문이라는 문은 모두 열었다. 그리고 가스관에 설치된 시간 차단기를 확인했다. 가스레인지에 올라앉은 냄비 안에서 행주는 시커멓게 타서 붉은 불빛까지 뽐내고 있었다. 시간 차단기에 20분으로 설정해 놓고 늘 그렇게 사용했기에 안심하고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 당연히 옆으로 누워 있어야 할 차단기는 배관에 차렷 자세로 서 있었다.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시간을 지키지 못한 차단기를 향해 소리 질렀다. ‘너 뭐야? 근무 태만이잖아!’ 차단기를 향해 괜한 화풀이를 했지만 원인은 건전지 수명이 다 된 것을 미처 파악하지 못한 내 탓이었다.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틀어 연기를 빼내고 나니 천장 위의 여자도 조용해졌다. 그렇게 불안감이 사라질 줄 알았다. 하지만 오후가 되어도 기분 나쁜 불안감은 사라지지 않았다. '뭐지? 왜 그러지? 내가 중요한 일을 잊고 있는 건가? 아니야 별일 없을 거야!' 그렇게 자신을 진정시키고 있었다.     




  종일 불안감에 시달리는 동안 남편 퇴근 시간이 되었다. 저녁으로 계란찜이나 해야지 하면서 마당으로 나섰다. 닭장으로 가려면 대문을 나가 한쪽에 동그마니 서 있는 빨간 우편함을 돌아가야 했다. 그 우편함을 지나는데 우편물이 눈에 띄었다. 우편물은 늘 남편이 가져왔기에 나는 관심을 두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것에 신경이 쓰였다. 꺼내 보니 산청경찰청에서 날아온 것이었다. 순간! 머리카락이 쭈뼛하며 쿵! 가슴이 내려앉았다. 며칠 전 재능기부 일로 읍에 갔었다. 돌아오는 길에 잠깐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네비에서 속도를 줄이라고 악을 썼지만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초등학교 앞이라는 것을 인지했을 땐 이미 늦었다. 급하게 속도를 줄인다고 줄였지만 아차! 하는 순간에 40킬로로 지났다. 물론 속도를 인지하지 못한 내 탓이긴 하지만 그래도 학생들이 없는 시간에는 탄력적으로 시행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며 돌아왔다. 그리고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범칙금 고지서가 날아들었다.

 뜯어보니 범칙금 56.000원을 납부하라는 고지서였다. 하루 종일 기분 나쁘게 나를 괴롭혔던 불안감의 원인은 바로 이 고지서였다.     




  내 운전실력을 믿지 못하는 남편은 늘 천천히 다니라고 잔소리했다. 그런데 남편이 알게 되면 내 자존감은 또 무너질 것이다. 지난해 통화를 하다가 60킬로 제한 구역을 80으로 달렸다가 45.000원짜리 고지서가 날아왔었다. 남편은 그 돈을 내면서 쉼 없이 퉁박을 주었다. 그때의 사건이 다시 떠오르자 머리는 도리질 쳤다. 남편한테 들키면 안 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급해졌다. 퇴근하기 전에 흔적을 없애야 했다. 서둘러 닭장에 가서 계란을 꺼내왔다. 지금은 계란찜이 급한 게 아니다. 주방에 던져두고 고지서에 적힌 계좌번호로 돈부터 입금했다. 그리고 증거물이 되는 고지서는 북북 찢어 쓰레기통에 버렸다. 그런데 혹시 남편이 보게 되는 건 아닌가? 다시 불안감이 꿈틀거렸다. 완전범죄를 위해 아궁이에 넣고 토치를  이용해 고지서에 불을 붙였다.  불이 붙은 고지서는 파란 불꽃을 피우며 화르르 치솟았다.  불안한 마음은 화르르 피어 올랐다 사그라 드는 불길과 함께 아궁이 속으로 사라졌다. 영원히,

매거진의 이전글 풀벌레 울음소리는 낭만이었고 모기는 현실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