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 설거지

시래기를 삶고 장을 담그고

by 작은거인





아침 햇살이 참 좋다. 정월 장을 담가야지. 소금물을 만들어 장을 담그고, 아궁이에 불을 지펴 시래기를 삶으며 문득 생각했다.

삼시세끼 밥을 먹고 그릇을 깨끗이 씻듯,

한 계절이 지나면 다가오는 계절을 위해 설거지를 해야 하지 않을까?라는

그렇게 겨울이라는 계절의 설거지를 했다.


찬바람에 바싹 마른 시래기를 삶는다. 구수한 냄새에 지난겨울을 헹궈내고, 장독마다 햇살을 담아 장을 갈무리 한다. 비로소 한 해의 계절 하나를 정리한다.

마른 흙에 거름을 내어 기운을 돋우고,

쌓인 낙엽을 긁어모아 태운다.

이것은 앞선 계절이 남긴 얼룩을 지우는

나만의 정갈한 뒷물질이다. 그렇게 봄을 맞는다.



녹음이 짙어지기 시작하면 마음이 바빠진다.

장마 오기 전, 막힌 물길을 트고

배수로 구석구석 쌓인 찌꺼기를 퍼내며

쏟아질 하늘에 미리 길을 내준다.

넘치지 않게, 모자라지 않게 여름의 길목을 닦아세우는 일이다.



가을볕에 몸을 말린 곡식들이 추석 달빛 아래 풍성하게 차려진다.

알곡을 거두어들인 자리마다 해야 할 일을 다 했다는 안도감에 색의 축제를 벌인다.

축제의 뜨거운 열기에 옷을 벗으니 잎을 떨군 나무가 시린 몸을 파르르 떤다.

아궁이에 불을 지피며 겨울을 채비한다.



돌아보니 육십 년,

매일 계절의 뒤를 닦으며 살았다.

차려진 계절을 맛있게 받아먹었고,

남겨진 흔적들을 깨끗이 씻어내었다.

오는 계절에게 빈 그릇 내어주듯,

이제는 삶의 설거지도 정갈히 닦아 자리를 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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