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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Oct 03. 2023

이제 더 이상 안 뺏길 거야!

  






몇 년 전 고사리를 끊으러 간 산에 사과나무가 있었다. 그 나무뿌리 부분엔 어미의

그늘에서 얌전히 쉬고 있는 아이를 닮은 곁가지가 자라고 있었다. 예쁘게 자라고 있는 그 곁가지가 탐이 났다. 이리저리 살피다가 호미로 곁가지 주변을 파기 시작했다. 다행히 그 가지엔 뿌리가 자라고 있었다. 뽑으려고 가지를 잡고 힘을 주어 보지만 어미의 몸에 붙어 있는 가지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나는 작은 곁가지를 만지작거리며 이렇게 속삭였다.

  ‘미안하지만 어차피 해가 들지 않는 어미의 그늘에서는 크게 성장하기 힘들어, 그러니까 우리 집으로 가자.’며 전지가위를 들이댔다.

  주방 창에서 너머에는 나의 작은 텃밭이 있는데 부추가 자라고 있는 중간쯤에 그 어린나무를 정성스럽게 심고 행여 죽을까 봐 오며 가며 물을 주고 극진히 보살폈다. 나의 정성 덕분인지 아니면 강한 생명력 때문인지 다행히 잘 자라서 꽃이 피기 시작했다.

 사과나무라고 생각하며 심은 나무는 열매 달린 걸 보니 능금나무였다. 사과나무는 한그루 자라고 있었기에 생각지도 않았던 능금나무라서 그 나무에 더 반가웠다.     

 지난해 열 개 정도의 열매가 달렸다. 가을이 되면서 빨갛게 익어 가고 있었다. 매일 오가며 열매를 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그런 와중에 수원에 일이 있어 일주일 정도 다녀왔었다. 집에 오자마자 그 능금나무부터 찾았다.  뿔 싸! 내가 집을 비운 사이 능금 열매는 단 한 알도 남아 있지 않고 모두 사라졌다. 주방에서 설거지하면서도 마당에 나가서도 텅 빈 그 나무를 볼 때마다 허망함에 오래도록 아쉬워했었다. 유난히 썰렁하고 허망했던 겨울이 가고 따뜻한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나는 능금나무에 더 많은 거름을 주었다.     

  

 거름의 영향일까? 5월이 되면서 하얀 꽃은 지난해보다 더 많이 피었다.  무더웠던 여름에 낙과도 없이 가을 언저리에서 제법 예쁘게 익어 갔다. 이번엔 뺏기지 않고 꼭 수확의 기쁨을 맛보리라 다짐하고 익는 과정을 지켜보고 있는데 추석이 다가왔다.

 수원 살던 우리 부부는 12년 전 산청으로 귀촌했다. 그 이후 명절이 되면 우리가 역귀성을 했다. 형제가 차도 없이 대중교통으로 산청까지 내려오려면 여러 번 차를 갈아타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어 힘들어했다. 그렇기도 하지만 수원 연화장에 모신 시부모님께 인사도 드려야 하고 고향에 모신 부모님 산소에 성묘도 해야 하는 이유가 큰 비중을 차지했다. 아들 집에서 추석을 보내려면 어쩔 수 없이 집을 비워야 하는데 능금이 사라질 까봐 신경 쓰였다. 색깔을 보니 익으려면 아직 퍼렇다. 때까치들이 눈독을 들이기에는 아직 멀었다고 생각하며 안심했다.

 수원에서 4일을 보내고 다시 산청 집으로 돌아왔다. 오자마자 열매부터 살펴보니 그사이 제법 붉은색으로 익고 있었다. 그런데 서른 알이 넘던 능금은 거의 사라지고 없다. ‘이런 아직 익지도 않았는데 능금은 사라지고...’

그 자리엔 열매를 달고 있던 가느다란 줄기만 달려있었다. 난 때까치들을 향해 주먹질을 해 보지만 이미 능금은 사라진 후였다.

 다행히 아직 그놈들 눈에 띄지 않은 능금 몇 알이 남았다. 익으려면 아직 더 기다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제 더 이상 안 뺏길 거야!" 구시렁거리며 열매를 모두 땄다.

익기를 기다리면 이번에도 저놈들 주둥이 속으로 들어가고 말것이다.






P  S, 덜 익은 능금  맛을 보니 어릴적 먹었던 홍옥의 새콤한 맛이 났다. 그대로 먹기는 힘들것 같아 꿀에 담궜다. 숙성시켜서 비빔앙념장 만들때 써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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