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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Oct 08. 2023

개는 무섭고 꼬마사과는 맛있다.


  새벽 출근하는 남편을 따라 나가 집까지 걷는 운동을 2년째 하고 있다. 남편 트럭을 타고 집에서 출발해 10킬로 되는 지점에 내려 집까지 걸어오 두 시간이 걸린다. 비 오는 날을 빼고는 거의 매일 걸은 결과 8킬로를 감량했다. 몸이 가벼워지고 건강이 좋아진 건 당연했다. 그렇게 걷기의 매력에 푹 빠져 아침마다 걷는 일은 즐거움, 그 자체였다. 어느 날 집 근처까지 왔는데 큰 개가 길을 막아섰다. 그 개는 집 아래 호수 근처에 사는 데 가끔 숲을 돌아다니며 우리 집 마당까지 들어와 공포감을 주는 개였다. 주인에게 묶어 놓으라고 몇 번이나 부탁했지만 사람은 절대 물지 않는다고 손사래를 치며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존재 자체로 공포감을 주는 개의 덩치는 나보다 두 배 이상 컸다. 더군다나 견주는 귀가 들리지 않는 사람이었다. 다시 말해 개가 사람에게 달려들어도 소리를 들을 수 없어 대처할 능력이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주인은 자신의 심각성은 생각지도 않고 상대가 느끼는 공포감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그러니 당연히 말이 통할 리 없었다. 혼자 살면서 자식처럼 여기고 의지하며 지내는 걸 아는데 신고한다는 것 또한 못할 일이었다. 2년 가까이 그 길을 지나다녔지만 위협적이진 않아 그나마 다행이었다.

 그렇게 안심하고 그 길을 지나려는데 갑자기 무서운 송곳니를 드러내고 으르렁거리며 나를 막아섰다. 겁에 질린 나는 주변을 살폈지만 주인은 보이지 않았다. 달려들 경우를 대비해 전화기에 119를 띄워놓고 뒷걸음질 치며 개의 눈을 강하게 노려봤다. 그놈은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어슬렁어슬렁 따라왔다. 나는 빠른 뒷걸음질을 하며 개와 거리를 유지했다. 집에서 어느 정도 거리가 멀어지자 더 이상 따라오지 않았다.


 그 이후,  운동 코스를 집 윗쪽 길로 바꾸고 석 달 동안 그 길을 가지 않았다. 하지만 남편이 출근하고 나서 혼자 걷기 시작하자 운동을 빼먹는 기회가 잦아졌다. 걷는 일이 게을러지는 건 당연지사였다. 매일 두 시간씩 걷던 습관은 한 시간으로 줄어들고 그나마도 자주 거르게 되었다. 몸에는 이상 기운이 감돌고 뱃살이 다시 붙기 시작했다. 갱년기 이후 붙기 시작한 살을 2년 동안 열심히 걸어서 10킬로 가까이 뺐는데 다시 찌면 그동안의 노력은 물거품이 된다.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에 먼 길을 돌더라도 다시 남편 출근길에 따라나 서자 다짐했다. 남편 트럭을 타고 다시 예의 출발점에 내려섰다.

 목을 돌리고 팔을 늘린다. 발목을 돌리고 무릎을 돌린다. 허벅지를 늘린다. 허리를 쭈욱 펴고 아랫배에 힘을 준다. 이어폰을 귀에 꽂고 윌라의 읽어주는 책을 듣는다.  팔은 앞, 뒤로 힘차게 흔들며 걷는다. 지리산 골짜기에서 흐르는 물이 계곡으로 모여 냇가로 흘러들어 물안개를 피워 낸다. 상쾌한 새벽 공기가 폐 깊숙이까지 파고든다. 오랜만에 보는 새벽하늘은 유난히 아름답고 푸르던 들판은 황금빛 옷으로 갈아입고 있다. 강변길을 걷다가 차도를 걷다가 마을을 지난다.



 마당이 예쁘게 꾸며진 어느 집 울타리엔 잎을 떨군 사과나무가 있다. 잎을 모조리 떨군 나무엔 꼬마사과가 요염한 듯 귀여운 듯 주렁주렁 달렸다. 새벽과 하늘과 구름, 아래에 자태를 뽐내는 사과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고 발걸음을 잡는다. 주머니에서 휴대폰을 꺼내어 카메라를 연다. 찰칵찰칵 붉게 익은 꼬마사과가 휴대폰 안으로 들어온다. 사진을 찍으며 주인이 볼세라 냉큼 사과 한 알을 손안에 넣는다. 두근거리는 가슴을 진정시켜 보지만 사과나무를 벗어나려는 빠른 걸음에 숨소리만 더 거칠어진다. 한참을 빠른 걸음에 집중하다 다리 위에 멈춘다. 은빛을 반짝이며 다리 아래를 지나는 시냇물을 바라보며 냉큼 한입 베어 문다. 홍옥의 맛이 입안에서 마구마구  돌아다닌다. 맛있다.!




 다시 걷기 시작한 길이지만 그 길로 가다가 또 개를 만나면 어쩌지? 생각만 해도 다리는 후들거리고 심장은 쪼그라들었다. 그놈에게 물렸다가는 방망이질을 심하게 당해 너덜너덜해진 걸레 쪼가리처럼 될 것 같았다. 큰길 하나만 건너면 우리 집이지만 개가 길목을 지키고 있는 한 다시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결국 에둘러 오는 먼 길을 선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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