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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Oct 13. 2023

시아버님은 말 못 하고 죽은 귀신이 되었다.

   




  8월 마지막 주엔 김장배추를 심어야 하는데 비도 자주 내렸고 또 이런저런 이유로 시기가 늦었다.

 비 소식이 있던 그날은 새벽에 잠깐 비를 뿌리고 이내 그쳤다. 덕분에 남편은 출근하지 않았다. 아내는 아침을 먹으며 남편에게 배추 심을 밭을 만들자고 했다. 아내가 설거지하는 동안 남편은 어느새 농기구를 챙겨 밭으로 갔다.      

농사를 지어본 적 없는 남편이 흙을 만지는 일은 늘 서툴다. 자급자족하기 위해 짓는 농사지만 심고 키우는 모든 먹거리는 아내의 손을 거쳐야 했다. 밭에서 일을 할 때마다 남편을 향한 아내의 잔소리는 빠지지 않았다. 그때마다 남편도 지지 않고 말꼬리를 잡고 늘어졌다.     

남편은 거름을 골고루 섞기 위해  흙을 뒤집으며 삽질을 꼼꼼하게 하지 않았다.

 어김없이 아내가 잔소리를 쏟아낸다.

 “삽질을 꼼꼼하게 해야 거름이 골고루 섞이지” 하면 남편이 잽싸게 말꼬리를 잡는다.

 “이미 잘 섞어서 뒤집은 거라 괜찮아!”라고

 “고랑을 평평하게 만들어야 물이 잘 빠지지!” 하면

 “비가 오면 빗물에 흙이  흘러가서 알아서 골고루 메꿔 줄 거야!”라고 한다.

지치지 않고 덤벼드는 말꼬리에 아내는 쇠스랑으로 흙을 고르며 구시렁거린다.

 “우이씨! 말 못 하고 죽은 귀신이 씌었나?”

이내 남편의 말꼬리가 찰랑거린다.

 "신창복이가 (신창복 씨는 시아버님의 함자다) 말 못 하고 죽었잖아!"

  쇠스랑  손잡이를 잡은 아내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팔을 움직일 때마다  휙! 휙! 흙이 두둑 위에 거칠게 쌓인다. ‘신창복이가 말 못 하고 죽었잖아!’  남편의 목소리가 귓가에서 겅중거린다.

생전에 시아버님의 후덕한 얼굴이 두둑 위에 두둥 올라앉았다. 아내의 입에서 피식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더는 참지 못하고 배를 움켜쥐며 주저앉는다.

신창복이가 말 못 하고 죽었잖아! 신창복이가 말 못 하고 죽었잖아!

시아버님을 말 못 해 죽은 귀신을 만들어 버린 남편을 보며 배를 움켜쥐고 웃던 아내는 다리에 힘이 빠져 아예 흙 위에 철퍼덕 주저앉는다. 웃다가 울다가 눈물을 닦는 아내를 보며 ㅇㅇ에 털 난다고 놀리는 남편 말에 아내의 눈은 이내 가자미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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