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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Oct 10. 2023

아버지의 눈물

 오일장에 나가 마늘 한 접을 샀다. 오늘 중으로 심을 요량으로 장 구경은 다음으로 미루고 서둘러 돌아왔다.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 마늘을 쪼개며 알이 굵은 것은 종자용으로 작은 것은 양념용으로 선별했다. 며칠 전 미리 비닐을 씌워 마늘 심을 밭을 만들어 놓은 곳으로 갔다.

귀촌 후, 해마다 마늘 심는다, 그때마다 생각나는 아픈 기억이 있다.    



 

   내가 태어난 곳은 경기도에 속해 있는 축령산 아래 산골짜기다. 산골의 11월은 한겨울처럼 바람도 거세고 몹시 추웠다.

 잠자리에 들면서 바람에 문이 열리지 않게 문고리에 숟갈을 거꾸로 꽂아 놓았다. 격자 무늬의 문을 흔들어 대는 바람이 방안으로 찬 바람을 연신 들이밀던 밤이었다. 창호지 문이 괴기하게 울어대는 통에 잠을 깼다. 밖에서 ‘우당탕탕’ 하는 소리가 들렸다. 잠에 취한 엄마의 목소리가 중얼거렸다.

 "오늘따라 무슨 바람이 저리 세게 분다냐?"     



새벽녘, 할머니와 아버지의 격앙된 목소리가 잠에 취해있는 우리를 깨웠다. 어수선한 분위기에 찬바람에 또르르 말아진 몸을 잔뜩 웅크리며 하나, 둘 마루로 나왔다.

 할머니와 아버지 엄마의 화난 목소리가 안마당을 집안을 쑤시고 다녔다.

 아버지는 마늘을 수확해서 종자로 팔려고 수 뒤란에 걸어두었다. 그런데 그 마늘이 몽땅 없어졌다는 것이다.

그해엔 마늘이 유난히 비쌌던 걸로 기억된다. 아니 어른들이 그렇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 마늘은 우리 형제들의 등록금이었다. 우리는 차치하고 오빠의 등록금이었다. 시골 중학교에서 특출 나게 공부를 잘했던 오빠는 아버지의 희망이었다. 그런 오빠의 등록금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것이다. 아버지의 눈에 허망함이 가득 담겨 있던 그 눈빛은 지금도 내 머릿속에 선명하게 남아있다.     

 그날 저녁 아버지는 술에 취하면 늘 그랬듯이 남동생의 이름을 부르며 깊이 잠든 마을을 흔들어 깨웠다.

 비틀비틀 방으로 들어와 벽에 기대어 고개를 푹 숙이고 지독한 술 냄새를 토해냈다. 우리는 이불을 머리까지 덮어쓰고 숨소리를 삼키며 누워 있었다. 햇빛에 녹아내린 엿가락처럼 축 늘어진 아버지의 중얼거림이 방바닥을 스멀스멀 기어 다녔다.

  "다시는 내가, 내가 마늘을 심나 봐라. 그 마늘이, 그 마늘이 어떤 마늘인데,

그 중얼거림은 곧 흐느낌으로 변했다.

아버지는 도둑맞은 해부터 돌아가실 때까지 한 톨의 마늘도 심지 않으셨다.     

 


  윗지방은 겨울에 마늘을 심어 볏짚이나 왕겨를 덮어 얼지 않게 한다. 그렇게 겨울을 나고 봄에 싹을 틔운다. 6월 중순쯤에 수확한다.

 남부지방은 요즘이 마늘 심는 시기라 싹우고 틔워 겨울을 난다. 그리고 5월에 수확한다.  





    나는 오늘  한 접의 마늘을 심었다. 비닐 구멍마다 빠짐없이 꼭꼭 눌러 심고 흙으로 덮었다. 곧 뾰족뾰족 싹이 예쁘게 올라오겠지? 생각만으로도 설레고 기분이 좋아진다.

 마늘을 심어 놓고 내려와 지갑 속에서 아버지 사진을 꺼냈다. 그 사진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지금까지 내 지갑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사진 속 아버지는 언제나 청춘이다. "아버지 오늘  당신을 생각하며 마늘 심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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