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기 속에서 '일요일에 내려갈 건데 천왕봉 가자!'라는 동생의 목소리가 달려 왔다. 내 시간과 일정은 배제하고 동생의 일정만 통보하듯이 내뱉는 동생의 태도에 화가 났다. '나 너하고 놀아줄 시간 없다'라고 했더니 '동생은 뭐가 그렇게 바쁜데?' 라며 되물었다. 되묻는 질문에는 머리통을 뚫을 기세로 화가 올라왔다.
'집에서 노는 사람이 뭐가 그렇게 바쁜데?'라는 뜻으로 들렸기 때문이다.
'천왕봉 같이 갈 시간 없으니 너희 부부끼리 오르려면 내려와라!' 하고 전화를 끊었다.
우린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야 하니까 일찍 내려오라고 했다. 그럼에도 동생부부는 늦은 저녁을 먹었다. 맥주까지 한 잔 하는 동안 시간은 밤 열두 시를 넘었다.
부부만 오르자니 자신이 없다며 같이 가자는 동생에게 튕기듯 안 간다고 하고 잠자리에 누웠다.
다음날 남편은 출근하고 마음이 약해진 나는 결국 도시락을 싸서 배낭을 꾸렸다.
7시 20분 중산리에 도착!
버스로 이동해서 오르는 쉬운 코스를 두고
'너 어디 당해봐라.' 하는 심보로 가파른 칼바위 코스로 안내했다.
동생부부는 힘들어하면서도 제법 잘 따라왔다.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는 절,
법계사로 안내했다. 한 바퀴 둘러보고
오르고 오르고 개선문에 도착, 여기를 지나면
천왕봉이 코앞이다. 하지만 죽음의 계단이 기다리고 있다.
도대체 이 힘든 길을 왜 오르는 걸까? 자문하며 죽기 살기로 오르고 ㅎㅎ
월요일인데도 지리산의 가을을 즐기러 온 등산객들로 인해 천왕봉이 들썩거렸다. 정상석에서 인증숏을 찍기 위해 오랜 시간을 기다려야 했다.
정상에서 바라본 풍광
동생은 감탄의 감탄을 연발했다.
다시 자매의 발걸음은 장터목으로향했다.
제석봉 능선을 걷다가 돌아본 천왕봉을 보며 감탄하고 주목나무의 고사목이 사라진 재석봉 능선에 다시 자라기 시작하는 어린 주목나무를 감상하며 장터목에 도착했다. 지병이 있어 힘들어하는 동생의 남편을 내려 보내고 자매는 다시 지리산 8경에 속하는 연하선경길을 걷기로 했다.
연하선경길,
동생은 그 길을 한참을 바라보더니 우리가 이렇게 많이 걸었어? 하며 감격했다.
나도 혼잣말하듯'자동차만 빠른 줄 아니? 우리가 걷는 한발 한 발이 느린 것 같아도 봐라. 얼마나 대단하냐? '
날씨가 시시각각 변하는 지리산이다.
촛대봉에서 바라본 세석평전엔 먹구름이 낮게 내려앉았다.
세석대피소에서 잠깐 쉼을 하고 거림으로 하산하는 길엔 떡갈나무가 노랗게 물들었고 애기단풍
나무들도 형형색색으로 물들어 아름다운 자태로 서 있다.
그 길을 자매가 걷고 있다. 앞에 가는 동생의 다리가 후들거린다.
그런 동생에게 짓궂게 한마디 던졌다.
"힘들지? 이제 다시는 지리산 걷자는 소리 안 하겠지?"
"아니! 너무 좋은데 내년 봄에 진달래 보러 또 와야지."라고 한다.
열한 시간의 산행 길에는 어둠이 내려앉기 시작했다. 결국 핸드폰 불빛으로 길을 밝히며 내려왔다. 거림계곡에는 반달이 밤수영을 즐기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