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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Nov 07. 2023

주먹이 운다


 우리 부부는 35주년 결혼기념일에 맞춰 2박 3일째 여행 중이다. 이번 여행 콘셉트를 감성여행으로 정하고 차박을 하고 있다.
첫째 날은 변산반도 격포항에서 차박을 하고 내변산 단풍을 즐겼다.
둘째 날은 선운사를 가기로 하고 선운사 주차장에 자리를 잡았다. 비바람이 새벽까지 울어 대는 통에 잠을 설쳤다.
아침을 먹어야 하는데 거센 바람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결국 밖에 나가 먹고 오기로 하고 나갔지만 식당을 찾지 못했다. 컵라면으로 해결하기로 하고 주차장으로 돌아왔다. 편의점으로 향하는데 옆 건물에 있는 식당 서너 군데에 불이 켜 있었다. 그중에 난 '산채보리비빔밥'이라는 간판이 달린 식당을 선택했다.
남편의 볼맨 목소리가 툴툴거렸다.
"아침부터 비빔밥 먹자고?"
"다른 메뉴도 있겠지. 아침장사 하면서 비빔밥만 팔겠어? 잔치국수도 있네."
 전광판에서 깜박이며 지나가는 잔치국수라는 글을 읽은 아내가 남편을 달랬다.
또 툴툴이가 따지듯 덤볐다.
"아침부터 국수 먹자고?"
아내의 눈은 식당의 전면유리를 빠르게 훑었다.
"저기 황태해장국도 있네! 저거 먹으면 되지. 그런데 왜 그렇게 툴툴거려? 들어가서 메뉴가 맘에 안 들면 다시 나오면 되지!"
아내의 공격에 남편은 갑자기 갓난쟁이가 옹알이하듯 옹알거렸다.
'그래! 좋은 날이니 만큼 참아야지'라며 짜증을 꿀꺽 삼켰다. 남편의 뒤통수를 한대 후려갈기고 싶은 충동을 참느라 주먹 쥔 손에 힘이 들어갔다.

티격태격하며  들어간 식당의 주인은 꽤나 친절했다. 상냥하게 주문을 받는 주인의 태도에  황태해장국을 주문하는 아내의 주둥이가 쏙 들어갔다. 그러나 앞에 앉은 남편의 얼굴을 보자 또 속이 부글거렸다.

잠시 후. 주문한 음식이 나왔다.
"사장님! 여기 맥주 한 병 주세요."
아내는 컵에 맥주를 가득 채워 단숨에 마셨다. 답답했던 속이 뻥 하고 뚫렸다.

밥을 먹고 난 후, 따끈한 숭늉 한 모금 넘기니 부글거리던 속이 얌전하게 가라앉았다.

두 손 마주 잡은 부부는 선운사 단풍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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