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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작은거인 Nov 09. 2023

있는 그대로 네 번째 이야기




세월이 참 빠르다. 긴장된 마음으로 쭈뼛쭈뼛 글쓰기 수업이 있는 교실 문을 열었을 때가 3년 전이었다. 첫 수업에서  어린 시절의 첫 기억에 대해 써 보라는 글제가 주어졌다. 글을 어떻게 쓰는지도 모르고 그냥 생각나는 대로 써서 냈던  글에 강사님과 학생들에게서 찬사를 받았다. 누군가에게 칭찬받고 인정받는 일에 익숙지 않았던 나는 그 분위기가 낯설기도 했지만  뭐라 형언할 수 없는 기분에 사로 잡혔다. 아마 그때 그런 칭찬이 없었다면 과연 지금까지 글을 쓸 수 있었을까?
지금 생각해 봐도 참으로 감사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나는 '있는 그대로의 글쓰기'의 2기 회원이 되었다.

                   *메 뿌리
                             

 추운 겨울이었나? 이른 봄이었나? 땅에  서릿발이 서있던 기억으로는 겨울에서 봄으로 가는 길목이었나 보다. 호미와 바구니를 들고 냉이를 캐는 동네 언니들 무리 속엔 하루 차이로 태어난 을순이와 순자도 있었다.
땅이 얼어 호미는 잘 들어가지 않았다. 헛 호미질만 하던 을순이는  밭둑가에서 메뿌리를 발견했다. 나팔꽃을 닮은 수줍은 분홍색 꽃을 피우는 메뿌리였다.
밥 할 때 얹어서 먹으면 고구마 맛이 났다. 캐서 엄마에게 자랑하고 싶은 맘에 뿌리가 끊어지지 않도록 조심조심 캐 나갔다.
어린 손으로 파지지 않는 땅을 파며 뿌리 캐기에
열중하고 있는데 반대쪽에서 캐 오는 순자와 마주쳤다.
서로 내 거라고 우기다가 밭을 뒹굴며 머리카락을 움켜잡고 몸싸움까지 했다.
누군가가 뜯어말려 일어났다. 싸우는 소리에 가까이에 있던 순자엄마가 달려온 것이었다.
결국 메뿌리는 다 끊어져 온 데 간데없었다.
억울해진 을순이는 계속해서 씩씩거렸다.
순자 엄마가 을순이 엄마를 불렀다.
"낙현아! 이 년좀 데려가라!"
낙현이는 을순이 두 살위의 오빠이름이었다.
을순이는 흙 투성이가 된 채 엄마의 손에 질질 끌려갔다. 끌려가면서도 분이 풀리지 않아 소리를 질러댔다.
"순자가 내 메 뿌리 다 망가뜨렸다고!  메뿌리는 내가 먼저 캤다고!"
을순이는 순자에게 헛주먹질을 해댔다. 순자는 엄마 손을 잡고 서서 혀를 날름거리고 있었다.

 눈이 유난히도 컸던 순자 을순이 보다 하루 늦게 태어났으면서도 늘 언니라고 우기던 순자는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지금 다시 읽어보니 부끄러움이 얼굴로 모여들어 화끈거리는 열기를 내뿜는다.
서툰 문장으로 글을 써서 사람들 앞에서 발표하는 일은  큰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떨리고 부끄러워 포기하려고 했던 적도 있었다.
글이 써지지 않아 주저 앉았다가도 다시 썼다. 일기를 쓰듯 한 줄이라도 쓰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포기하지 않은 결과  다섯 권의 책이 만들어졌다. 책꽂이에 꽂아 놓고 보고 있으니 벅찬 감동이 밀려왔다.

 일 년 동안 부지런히 글을 썼다. 회원들이 모여 글을 쓰고 합평하며 마음 아픈 글을 읽으면 서로 위로했고 기쁜 글을 읽으면 함께 웃었던 시간들이었다.  그 글은 가을 햇살이 환하게 웃는 날에 책으로 다시 태어났다.  출반기념회 행사는 소소했지만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다. 좋은 인연으로 만나는 그 행복한 시간들이 앞으로도 오래 지속되기를 간절하게 기도했다.
내 마음속 글 저장고가 텅텅 비워질 때까지 쓰고 또 써야겠다는 다짐을 하는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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